여행자의 기록 27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최고의 선물.
정 많은 벗이 예약하고 벗의 친절한 애인이 차를 운전하고 멜버른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거리에 있는 모닝턴 페닌 실라 온천으로 향했다. 야외에서 저녁놀을 감상하면서 온천욕을 즐기기로. 둘이 오붓이 즐겨야 할 밤을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밤으로 보낸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이 사진으로 대신한다.
늦은 밤 노천 온천에서 먹은 김밥과 샌드위치는 왕의 밥상이 부럽지 않은 풍성한 만찬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애정도 아름답지만 솔직히 이제는 사람보다 자연이 주는 사랑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사방이 트인 언덕 꼭대기 노천 온천에 앉아 저 멀리 서녘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푸른 하늘이 시나브로 빛을 잃어갈 때 새초롬하니 하얀 반달이 떠올랐다.
수풀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콧잔등을 간질이며 노래를 부른다. 그 순간 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더없이 큰 사랑 완전한 사랑을 느꼈다. 바로 옆에 쉴 새 없이 왁자하게 떠드는 중국 여인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주위에서 떠들건 말건 내게는 이미 상관없는 일. 나는 나를 잊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그들을 모두 잊었다. 이 순간은 오직 자연과 나만이 존재한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말소리가 더 이상 듣그럽지도 보그럽지도 않았다. 하늘의 동무는 해와 달과 별. 멧부리의 벗은 나무와 바람과 새. 윤동주 시인이 하늘과 바람과 별을 벗 삼아 시를 노래한 까닭을 알겠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고도 깊은 그 아름다움은 여겨듣는 사람만이 느끼는 자연의 노래인 것.
해가 지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자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샤라락 샤라락 날개옷을 펼치며 내려왔다. 세상에! 밤하늘은 별들의 고향이구나! 은하수를 따라 펼쳐지는 별들의 여행. 도시 한복판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을 원 없이 바라본다. 날마다 이리 별을 올려다보고 산다면 시름이 말끔히 씻겨나갈 텐데.... 세속의 삶은 더러운 때가 덕깽이처럼 달라붙은 거울과 같다. 그 거울로 제 얼굴을 들여다보니 삶이 어지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사위가 컴컴해지자 추위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달콤한 몽상에서 깨어나 옹송그리며 언덕을 허둥지둥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