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멜버른, 파타고니아

여행자의 기록 28

by 홍재희 Hong Jaehee





나는 ‘노매드’라는 이름이 붙은 숙소에서 ‘노마드’의 삶을 그린 작가, 방랑을 글로 옮겼던 브루스 채트윈의 책을 펼쳐든다. 이곳 와이파이 이름도 ‘노마드 프리’다. 뭔가 기묘한 우연이 작용한 것만 같다.



숙소 가는 길에 할인서점이 하나 있었다. 발길이 저절로 향했다. 모든 책이 한 권당 단돈 7불. 아무거나 세 권을 고르면 20불. 나 같은 참새에겐 방앗간이 책방이 아니던가. 참새는 탐정의 눈으로 서가를 꼼꼼히 훑었다. 그러다 이 제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에서(In Patagonia)>, <송라인(Song lines) > 그리고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 이렇게 세 권에 20불을 주고 샀다. 세상 다 가진 것 같잖아 이거!



<파타고니아에서(In Patagonia)>라는 제목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파, 타, 고. 니, 아. 이 이름은 내게 알 수 없이 사무치는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미치게 설렌다. 아주 오래전부터 파타고니아에 가기를 꿈꿨다.



그러나 아직도 가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땅. 그 이름. 파타고니아.



어느 책에서 "파타고니아는 바로 세상의 끝 세계의 끝이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책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에서 저자는 바로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에서>를 언급했었다. 파타고니아는 “세상 모든 추방자들이 삶의 끝에서 찾아드는 곳”. 나는 즉시 그 문장에 주문처럼 사로잡혔고 사이렌의 노랫소리처럼 홀렸고 급기야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지독한 열병 짝사랑에 빠졌다.



지금까지도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은 내 마음속에 동경의 상징이자 환상 특급 기차다. 브루스 채트윈이 파타고니아를 육 개월 동안 여행하며 방랑할 때가 1974년 그가 서른 넷일 때다. 벌써 반 세기가 넘었다.21세기 현실 속 파타고니아는 채트원이 이야기하던 파타고니아가 이미 아닐 것이다. 내 마음속에 간직한 파타고니아 역시 전혀 다른 세계일 것이다. 그림엽서와 인스타그램의 차이만큼이나. 상상과 현실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난 길 위에서 부초처럼 굴러다녀도 끄덕 없을 서른넷이 아니다. 아직 늙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젊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다. 꿈을 꾸고 꿈을 품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내 꿈의 이름은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는 이루지 못한 사랑 내게는 영원한 사랑의 다른 이름.




멜버른 한복판 호텔 싱글룸에서 홀로 창가에 서서 어둑어둑해져 가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유랑하는 방랑자 세상의 모든 노마드 대환영한다는 호스텔에서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 갓 스물 여행자들의 빛나는 젊음 사이에서, 갖은 소음과 소란스러운 대화 속에 홀로 침묵하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찾으며 무엇을 헤매고 무엇을 갈구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생의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는 지금 이 순간 파타고니아에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며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여행기 방랑기. <파타고니아에서> 생각해 보면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아아, 나도 언젠가 방랑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겠지. 그 길 위에서 삶과 사랑과 사람에 대해서. 생의 본질에 대해서. 이 생이 기적처럼 이야기가 내게 다가올 때. 종이 몇 장에 온 세상을 담을 날이 오겠지.



내가 인생의 모든 시간을 바쳐 찾아다닌 것은 바로 ‘기적’이었다.

ㅡ 브루스 채트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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