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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정보다 정의를 원한다

한국 사회 출산율 0.78의 의미

by 홍재희 Hong Jaehee



1.


한국의 출생율 0.78.


계급, 정치색, 진영, 성별, 젠더의 구분이 없는, 한국 사회의 존망이 달린 국가적 문제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여성인가? 천만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알을 깨고 나오면 이소하고 둥지를 떠나보내는 새나 태어나자마자 두 다리로 일어서는 송아지나 사슴 같은 포유류와도 또 다르다. 인간의 아이는 다른 동물과 달리 취약하여 십 수 년의 세월을 성인인 보호자의 양육을 받고 긴긴 돌봄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것이 출산 -양육이라는 인간의 사회화 과정이다. 그런데 이를 오로지 여성 홀로 해내기는 절대 불가능하다. 아이 한 명을 제대로 된 사람으로 기르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 대가족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기 전 한국 사회에서 아이는 여성 혼자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동네와 마을 여성 전부가 같이 길렀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20세기의 농촌 봉건 공동체는 완전 해체되었고, 가족 구성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에서 이제는 초개인가족으로 급변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오직 결혼해서만, 기혼 여성만이, 혼자서 출산을 담당하고 아이도 양육하라고? 남녀가 맞벌이를 해야 겨우 생계와 양육비를 감당하는 현실에서?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현재 한국 정부의 인식과 통계는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전근대적 사고가 지배한다. 결혼 제도 말고는 애를 낳을 수 있는 통로 자체가 막혀있다. 젊은 여성에게 올가미를 씌운다. 한국과 가까운 나라 일본 역시 비슷하다. 일본은 20~29세 가임기 여성을 두고 ‘인구 재생산력’이라는 명칭까지 만들었다. 낮은 출산율의 원인을 찾고자 유배우자 출산율까지 끄집어낸다. 저출생이 문제라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비혼여성에게 저출생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한심하다 못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근시안적 사고다. 왜 인구 감소가 됐는지를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고, 무조건 낳아라. 낳으라 하는 식의 무식한 정치나 정책은 아무런 대안이 될 수 없다. 저출산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이 사회에 누적된 곯아터진 문제의 결과인 것이다. 여성 한 명의 책임으로만 문제의 원인을 호도하고 그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전가한다면 저출산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국가가 정부가 사회가 양육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그저 내 새끼를 잘 키우는 게 아니라 이 나라를 책임질 미래 세대를 키우는 것이며 전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사회 전체의 공동체 인식이 필요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반대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망했다. 바로 인구 감소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로마멸망의 유력한 근거 중 하나가 경기침체라 한다. 로마제국의 전성기에는 0에 가까운 저비용으로 노예를 공급해 단위 노동당 생산성을 극대화했는데, 차차로 이 구조가 약해지며 불황에 빠지게 되었다. 재정도 문제다. 복지수혜를 독점한 로마 시민의 부양 부담은 커지고, 끝내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노예 수입은 줄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기왕의 노동력을 대던 유입 민족의 불만으로 로마 사회는 내분에 한술 더 떠서 로마인의 출산 기피 현상(저출산 신드롬)이 더해진다.


60년대 파리가, 90년대 일본이 외국인노동자를 대량으로 받아들이면서 곤란을 겪었던 경험, 이게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1천 년도 넘은 로마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도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력을 수입, 사람을 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과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즉 이민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우선 노동력만….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이주노동자들이 정착하게 되고, 사회는 다문화화 돼가는데, 그저 나 몰라라 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쓸모가 없어졌다고 내다 버릴 수 없다.


아무튼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칼과 방패 삼아 종횡무진 기업의 수익 올리기만 급급했던 한국 사회, 한국의 약탈적 자본주의는 자연스레 인구 감소로 갈 수밖에 없다. 인구라는 게 하루아침에 팍 줄지는 않으니, 그 영향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이미 IMF 이후 20년이 넘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를 양산하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노동유연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이 단기간에는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줄 줄 모른다(적어도 사모펀드니 뭐니 하는 사냥꾼들에게는) 하지만, 로마멸망처럼, 머지않아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면, 한국 사회의 공도공망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만일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 다해주더라도 - 여성의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회사라면,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아주고 보호해주고, 남성의 육아휴직을 지지하는 회사라면 누가 아이를 낳지 않겠는가? 국가와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고 보조해주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야한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프랑스의 경우를 연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듯- 적어도 최악의 인구 감소는 늦을 수 있다.



2.


대한민국의 GDP(국내총생산)는 420여 배 커져 세계 10위 안에 들었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서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무역량은 세계 6~7위권이고, 과학기술투자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5위를 자랑한다. 이런 기세는 자연스레 문화 분야로 확장돼 K팝, K방역 등 'K'자를 접두어로 붙이는 신조어들이 줄을 잇는다. 맞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GNP 3만 달러가 넘는 부자 나라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부자인가?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해마다 더 심각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의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에 달하는 46.5%를 가져갔다. 하위 50%는 전체 소득의 16%를 얻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양극화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지니계수(소득불평등 지수)는 36개 회원국 중 28위이고, 상대적 빈곤율과 소득 5분위 배율도 각각 31위와 29위로 거의 바닥 수준이다. 죽도록 일해도 오직 부자만 잘 사는 나라 아닌가? 땅 짚고 헤엄치기. 생각해봐라. 한 사람이 1,277채 빌라를 소유하는 마당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평생토록 집 한채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애를 낳겠니? 안 낳겠니? 너 같으면 낳겠니?


전 세계의 선진국들 중에서도 한국만큼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빈부격차가 심각한 나라가 없다. 한마디로 끔찍하게 불평등한 선진국이란 소리다. 모두가 뼈빠지게 일해도 몇몇이 다 차지하는 승자독식 시스템인 것.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빈곤율이 최악인 나라. 그리하여 현재 OCED 출생율 최저, 초고령화 비율 최고, 노인빈곤율 1위, 자살율 부동의 1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번식을 포기한다.

바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데도 하나같이 능력주의의 신화에 젖어 '공정' 따위나 부르짖고 있다.

나는 '공정'이 아니라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정의'를 원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둥지가 없어서 애를 못 낳고 지방은 먹이가 없어서 애를 못 낳는다.

새도 둥지가 있어야 알을 낳는 법이다.

일만 하는 일개미는 알을 낳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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