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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과 지성인

by 홍재희 Hong Jaehee




지성인이란 누구인가. 때때로 지식인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또는 별개의 의미로 지칭하기도 하는 지성인은 누구를 말함인가.


일찌기 사르트르는 지성인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특수한 지식과 거기에 상응하는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지식인을 단순한 기술자나 전문가로 보는 반면, 의사와 같은 특수한 지식을 가졌으나 '국경없는 의사회'와 같이 인류 보편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사용하는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을 읽으면 사이드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놓는다.


현대의 지성인은 지성인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을 상품가치가 있도록 애쓰는 한편 사회적으로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비논쟁적이고 비정치적으로 보이게끔 자신을 객관적으로 만드는 데 골몰하는 현대의 전문 지식인, 지식팔이 지식 장사꾼일뿐이다. 냉전의 종식과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인류의 보편적 대의에 종사하며 체제에 비판적이며 항상 거리를 유지했던 전통적 지식인 상의 역할을 축소, 왜곡시킨다.


사이드는 독립적이고 비타협적으로 존재했던 지성인의 많은 수가 학교나 연구소 또는 기업과 국가에 의해 흡수 고용당한 지 오래라고 말한다. 긴 세월에 걸쳐 재야에서 활약한 재야 반체제 인사들, 교수, 언론인, 학자가 어느날 집권당의 의원이나 정부관료로 깜짝 영입되거나 의회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입문하는 과정은 바로 흡수 고용의 현실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이드는 말한다. 지성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피집권당의 편에 서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어떤 기관의 수단이 되기를 거부하거나 그들의 목적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기를 고사하는 것만 아니라 국가적인 정체성, 국가 언어, 집단적 사고로부터 비켜나 있는 것이라고.


예를 들어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자처하거나 공공연히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치자. 하지만 지금까지 이 사회를 규제하는 가부장제와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 사회에서 소외받아온 소수자와 약자, 여성주의와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 등등을 외면하거나 폄하한다면, 그는 가짜 진보 지식인이다. 진실로 지식인이라면 사회적으로 힘 없고 약하고 발언하지 못하는 자의 편에 속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거시적인 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진보임을 자청하면서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에서는 가장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사람이라면 그는 사이비 지성인이다. 진실로 지성인은 당연히 한 사회의 지배적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의심하고 반대하는 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어쩌다 참석하는 술자리나 모임에서 이런 사이비들을 종종 만난다. 지식인과 교양인을 자청하면서 거짓된 겸손을 가장하는 이들. 학벌 학연 지연과 계급의 노예이자 자본에 종속된 속물이면서 진보와 미래를 논하는 이들. 정치적 올바름을 논하면서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가 결여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들. 다름과 차이를 입으로는 긍정하면서 동시에 나와 다른 이를 행동으로는 차별하는 이들.


이런 부류는 주로 대학 졸업장 간판과 직함 또는 명함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계급, 연령과 성별, 젠더 그리고 학벌을 배경으로 자신을 우월한 엘리트로 그렇지 않은 타인을 열등하게 보며, 끊임없이 적과 우리편으로 편가르기와 패거리짓기를 한다. 권위주의의 화신들. 한마디로 촌스럽고 경박한 것들이다.



아, 날이 갈수록 이런 양아치들과 말섞기가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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