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을 앞두고 내란수괴와 공범들 척결 내란 종식과 위한 정당 해산은 헌법을 수호하는 민주공화국이라면 마땅히 집행할 막중한 국가적 책무이니 논외로 하고
석 달 뒤 치러질 대선을 계기로 더불어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합리적 보수 또는 중도 보수'로서 스스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상식과 합리를 장착한 원칙주의자이되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도덕과 양심을 지니고 불평등에 의의를 제기하는 인본주의자, 대화와 타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품위 있는 보수라면 나는 당신을 '보수'로서 존중한다.
진보라는 이름이 떨어지더라도 서운해할 것 없다. 그동안 국민의 힘 같은 수구세력 극우가 보수의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이 진보로서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었을 뿐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보수가 한 번도 제대로 보수다운 역할을 한 적이 없다. 혈서 쓰고 무릎 꿇고 막말하며 읍소하는 조폭들 전근대적 으아리에 맹폭하는 양아치 쓰레기와 같은 매국친일의 후손 -수구 엘리트집단이 보수의 탈을 쓰고 기득권을 70여 년 동안 장악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중도 보수인 민주당이 선의의 피해를 본 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변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다른 말로 혼란과 혼돈이다. 혼돈이 있으면 반드시 질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질서만으로는 정체하고 쇠퇴한다. 따라서 개혁은 필수불가결이다. 변화와 도전이 한 축이라면 안정과 유지가 다른 한 축이 된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해야 하는 이유다. 심지어 최소수의 극우와 극좌까지도 고르게 다양하게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적폐는 극우도 보수도 청산하지 못한다. 진보가 한다. 진보의 역할은 오른쪽으로 회귀하는 세상을 왼쪽으로 움직여 균형추를 맞추는 것이다. 기득권의 정의가 아닌 약자의 정의를 위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변화의 전면에 앞장서는 것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꿈꿨던 사람들이 있었다. 군사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염원한 대가로 빨갱이라 낙인찍혀 감옥에 가야 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바로 그들이 꿈꾸던 세상이 되었다. 노동자가 노조를 세우면 파업을 하면 빨갱이로 몰려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분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했다. 노동자는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이 아니라 근면성실한 신민이자 노비였던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기본 권리이며 노동자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고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당시에 그들 모두는 진보였다. 세월이 흘렀다. 그때 머리띠를 메고 주먹을 움켜쥐었던 당신은, 반민주와 반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앞장섰던 당신은 그런데 지금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2025년 당신이 진보라면 무엇보다 불평등에 맞서 반노동 반인권에 앞장서야 한다. 2025년의 진보주의자 '전태일'은 비정규직 하청 용역 알바 노동자이거나, 밥 하는 아줌마로 폄하받는 여성 노동자이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승진에서 잘리고 경력이 단절되고 성희롱 성폭력을 당하고도 정의에서 배제되는 세대불문 여성이거나, 동성애자라고, 트랜스젠더라고, 장애인이라고, 이주노동자라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받는 이들,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자연이라고 훼손되는 것들 , 전 지구상의 고통받는 이들 그 모든 전부이다. 만일 당신이 그들이 아니라면, 2025년 전태일의 편이 아니라면, 그들과 함께 '더불어' 가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진보가 아니다. 당신은 보수다.
만일 당신이 진보라면 2025년 이 시대의 실천적 과제로써 마땅히, 여성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즉 성평등이라는 젠더 의제를, 청년과 노동자 권익에 앞장서며 부의 재분배라는 공정과 정의라는 의제를 가장 앞에 놓아야 한다. 친자본 재벌 정책에 반대하고 부자 감세와 면세 부동산 보유세에 반대하고, 부동산과 교육 개혁을 최우선에, 각종 노동악법에 반대하며, 개발 독재와 성장주의 대신 생태와 환경을, 자신의 의제로 삼고 있어야 한다. 21세기 최전선의 진보에게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는 기본이다.
과거 386이라 불리었던 586 세대가 2025년에도 진보가 되려면, 과거 민주화 세력이었을 때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왼쪽으로 더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이미 더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역사와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앞장서지 않으면 당신은 이미 뒤로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지금도 진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과거보다 더, 더, 더, 왼쪽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이 먹고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자연스레 안정을 추구하려는 본능에 덧붙여 사람은 돈줄과 기득권을 쥐면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지키고자 보수화된다. 노화다. 안정과 질서를 바라는 욕망에 부지불식간에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가진 게 많아지고, 잃을 게 많아지고, 지킬 게 늘어나는데, 몸이 늙으면, 깨어있지 않고 성찰하지 않으면,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정신은 더 빨리 노화한다. 보수화된다.
진보라는 것은 당신이 민주화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한 활동가였다는 이력으로, 당시 시위에 동참했고 민주화 세력 후보 대통령을 뽑았다는 경험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당신이 돌멩이를 던지고 화염병을 들었든 간에,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갔다 온 전력이 있든 간에, 진보적인 사회문화운동을 했든 간에 당신의 이력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과거 당신의 민주화 투쟁 이력은 지금 현재 당신이 어디에 서있는가 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진보였던 자도 현재에 보수로 때로는 극우로 변한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 노동운동을 했다던 민중당 출신 김문수의 현재 행보를 보라. 반노동자정서의 친재벌적 인간인 김문수가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사실이 난센스, 엘리트주의로 무장하고 특권주의와 권위의식에 쩔은 그가 고용노동부 장관을 했다는 자체가 코미디다. 당 간판 페이스 오프 하는 국민의 힘과 민주당을 왔다 갔다 저울질하며 당적을 바꿔대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행보가 이를 반증한다. 자신의 진보성을 추호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개 그렇다. 무지와 무식이 신념과 결합하면 정치가 종교가 된다. 확신이 변치 않는 신념이 되면 신앙으로 변질된다. 회의 없는 확신은 믿음이자 종교다. 그것이 극우의 길이다.
반면 진보는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고정된 것도 아니며 영원하지도 않다. 진보는 자신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하고 성찰한다. 쉬지 않고 회의하되 세상이 오른쪽으로 기울 때 조금 더, 더, 더, 왼쪽으로.
바로 진보주의자의 태도다.
남북분단과 6.25. 냉전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던,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정치적 우편향으로 극심하게 기울어진 우리나라의 비극적 근현대사. 만일 보수의 탈을 쓰고 레드콤플렉스와 반공주의로 국민을 세뇌 호도시키며 70년 간 기득권의 세를 누렸던 수구세력에게서 보수의 이름을 탈환하고 민주당이 합리적 중도 보수의 이름을 되찾는다면, 김구선생이, 진보당의 조봉암이, 민주당의 김대중이 빨갱이로 몰렸던 어처구니없는 한국 근현대정치사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미래 한국의 진보주의자 역시 진보다운 진보의 어젠다를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