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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교육

by 홍재희 Hong Jaehee



내가 학창 시절에 우울증을 앓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학교 때문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던 충동을 한 두 번 느꼈던 것이 아니다.

내게 학교는 감옥이었다.

대꾸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며 내 질문을 묵살하고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을 읽었다고 체벌을 서슴지 않던 교사들이.

의문이 생기면 나는 손을 들었다.

그게 왜 정답입니까?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선생들은 날 골치 아파했고 애들은 이상한 애로 여겼다.

왜? 냐고 묻는 나에게 너 때문에 수업 진도 안 나간다며 대학 입시 망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짜증을 내거나 눈을 흘기던 애들이 생각난다.

외우고 또 외우고 찍기 또 찍기 문제풀이 정답 정답.

어느 누구도 입시에 쓸 데(?) 없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책상에 대가리 박고 달달 외우고 입시에 올인하는 아이들이 숨 막혔다. 정말 닭장에서 사육되는 닭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교과서를 세워놓고 책상 밑에 책을 펴고 읽거나

창밖 하늘 동동동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숨 막혀 죽지 않고 한숨을 돌렸던 이유는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풍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업 빼먹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추억이 몰래 도서관 구석에서 빈둥거리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충 야자 땡땡이치고 하릴 없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만화 보며 낄낄 대고, 혼자 영화 보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논술 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

'자기 주도형 학습' '심층 멘토링' 어쩌고가 학원가에 유행처럼 번졌다. 자기 주도인데 교사가 주도하고 아이들이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건 똑같았다.

원장에게 물었다.

ㅡ 말 그대로 자기 주도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때까지 글을 쓰려면 생각할 시간을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원장이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ㅡ여긴 학원이에요. 그랬다간 학부모들이 난리 나요.

자기 주도? 흥! 개나 줘라. 멘토링은 얼어 죽을.

학생들에게 물었다. 가장 재밌는 책이 뭐냐고.

하나같이 해리포터라고 대답했다. 그 거 말고는 또 뭐 있냐 했더니 또다시 해리포터라고 했다.

그 거 말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ㅡ선생니임~~ 학교 가고 학원 수업 들으면 바빠서 다른 책 읽을 시간 없어요.


특목고 외국어고 지망 학생들이 쓴 자소서에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과 오바마 같은 사람이 되겠다 했다.

서로 짠 듯이 국제기구와 NGO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 했다.

당시 반기문과 버락 오바마 자서전이 베스트셀러였다.


창문도 없는 방에서 자소서 쓰고 또 쓰고 고치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밖으로 나가자 했다.

공원에 가서 빈둥거리고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거야.

그랬더니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ㅡ원장 선생님이 허락했어요?

답답해서 학생들에게 다음 시간엔 학원 수업 대신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반문했다.

ㅡ 선생님, 전 지하철 타고 영화관 가는 길 몰라요.

ㅡ학원 끝나면 엄마가 차로 데리러 오는데요.

ㅡ 엄마가 핸드폰으로 저 어딨는지 다 알아요. 위치 추적되거든요.

ㅡ 허락 안 해주면 어떡해요? 선생님이 울 엄마한테 허락받아주세요.

ㅡ 선생님이 해결해 줄 거예요?


애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부모에게 사육되고 학원에서 조련받는 서커스 동물들처럼.

사육되는 닭장은 학원도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선생이 아니라 감옥에 애들을 가두어 놓고 감시하는 악덕 간수가 된 기분이었다.

아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미쳐 돌아가는구나.

전인교육? 자기 주도형 학습? 맨토링? 코칭? 개나 줘라.

지긋지긋한 학원 강사를 때려쳤다.

돈을 못 벌 지언정 이 판에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학원가에는 오줌도 누지 않을 것이다.


끔찍하다.

대한민국의 학교와 학원 시스템.

교도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심해지면 더 심해졌지

수년이 흘러도 하나도 안 변했다.

돌이켜 생각해 본다.

지금 학교를 다녔다면 내 발로 때려치웠을 것이다.

학원 근처는 그림자도 밟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시 가출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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