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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남자들

한국에는 왜 예의 바르고 친절한 매너 있는 중년 노년 남성들이 드물까?

by 홍재희 Hong Jaehee


I


2015년 사고로 수술을 하고 몇 개월을 재활 치료에 전념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휠체어 그다음에는 목발과 보조기에 의지해서 병원에 재활 치료를 하러 통원을 다녔다. 통원 기간 동안 목발과 보조기에 의지해 서울 거리와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 따로 없었다. 그 경험을 담아 책을 썼다.


떠오른다.


전철역 안. 승강기 문이 열리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그때 다짜고짜 승강기 안으로 맹렬히 돌진하는 한 노인, 분명히 목발을 짚은 나를 보았을 텐데도 목발을 툭 치고 지나쳤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삐끗 옆으로 쓰러질 뻔. 노인은 냉큼 승강기에 올라타버렸다. 나를 보았을 텐데도 그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기가 막혀 돌아선 내 눈앞에서 승강기 문이 찌잉-닫혔다.

.

귀가하던 길. 전철역 안. 승강기가 내려오길 기다리던 사람들.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뛰어들려 한 초등학생 둘. 순간 승강기 안에서 나오던 노인이 비키라며 그중 한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와락 밀어붙이고는 쌍욕을 해댔다. 뜻밖의 손찌검에 휘청한 아이는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아이의 할머니인 듯한 노인이,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자리를 떠버리는 노인의 등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순간. 목발을 쳐들어 그 따위 노인의 등짝을 확 내리쳐버리고 싶은 충동. 목발을 들어 노인의 머리통을 레이저 광선총으로 슝슝 쏴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낀다. 이런 짓거리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어떤 사과도 반성도 없는 이들은 대개 60대 이상 70대 남자들. 주로 노인들이다. 이런 종자들은 어쩌다 아주 드물게 여자도 있지만 거의 9할은 남자다.


제 가랑이 사이를 잘 보라는 듯이 다리를 쩍 벌리고 자리 두 칸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종자에서부터, 일부러 밀치는 건지 눈이 삔 건지 여자라면 그저 앞으로 전진하며 몸을 비비고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성희롱 종자에, 자리를 양보하라며 젊은이에게 삿대질에 입에 담기 험한 욕설을 하는 종자에까지 공공장소에서 이런 남자들을 보면 정말이지 분노 게이지가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장유유서를 들먹이며 요즘 어린것들은 예의가 없어 싸가지가 없어 세상이 말세네 어쩌고를 내뱉는 그 입에 양말을 마구 쑤셔 넣어 주고 싶다.


아이에게 승강기 문이 열리고 안에서 승객이 다 나오기 전까지는 차분히 가장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교육하지 않는 부모나, 아이의 부주의함이나 철없음에 참을성 없이 폭력으로 반응하는 어른이나, 이런 광경을 마주할 때마다 피로가 걷잡을 수 없이 몰려온다. 예의도 배려도 실종된 피로사회.


이 일에 대해서 당시 내가 페북에 글을 올렸는데 한 후배가 댓글을 달았다. 내 글을 읽고 자신이 임산부 시절 광화문 승강기에서 목격한 광경이 떠올랐다고. 한 아주머니가 정신지체아 청소년 딸을 데리고 탔는데 나이도 젊은 사람이 왜 이걸 타냐고 남자 노인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한다. 그 노인 눈에는 장애인 아이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일까.


후배는 이렇게 덧붙였다.


-언니. 난 그다음부터는 다시는 지하철 승강기 안타요. 더러워서 ㅠㅠ


-맞아요. 사고로 다친 후 석 달을 장애인으로 지낸 후 저는 이제 장애인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저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시적 장애로도 이리 살기가 피곤한데. ㅠㅠ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정말 하루하루가 투쟁이죠.


-피곤해요. 안하무인 노인들처럼 막무가내 남자들처럼 나도 남들에게 그렇게 행동하고 있진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고 살려니 더 피곤하고요. 이 나라에선 쓸데없는 데까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게 너무 피곤해요.


- 내 생각에는.... 그분들은 나이 들어 꼰대가 됐다기보다는 젊었을 때도 그랬을 거예요. 주위를 둘러보면 그래요. 무례함에는 연령도 국경도 없어요.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무슨 '나는 그래도 돼'라는 셀프 자격증 소지자들만 넘쳐나는 거 같아요.




II



하지만 이렇게 무례가 기본값인ㅡ 인간 실격인 인간들 때문에 얼굴을 찌 부리고 종일 기분을 더러워지는 날만 있는 건 아니다.


또 다른 날. 귀갓길. 전철 승강기 앞. 청소 카트를 밀고 승강기 안에 들어선 60대로 보이는 미화원 여성 한 분이 목발을 짚고 승강기를 타려고 절룩거리는 나를 보았다. 그녀는 서둘러 멈춤 단추를 눌러주었다. 덕분에 승강기에 무사히 탑승. 고맙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작고 사소한 친절이 파동이 되어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된다.


제발 이런 날이 많았으면.

감사와 고마움을 미소에 담아 낯선 이와 나누는 하루.

여유롭고 평안한 하루가.





III




집에 가는 길. 버스에 올랐다. 바로 앞서 차에 오르던 아저씨가 가방으로 내 안경을 쳤다. 어찌나 아프던지 눈알이 빠지고 콧잔등이 내려앉는 줄만 알았다.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다. 그 아픔을. 젠장. 문제는 그 바람에 안경 코다리가 똑-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이 아저씨.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대로 자리에 앉아버린다. 이.. 진상... XX. 한 무더기 욕이 입 밖으로 와르르 쏟아져 나올 뻔했다. 퍼진 등짝과 축 쳐진 똥배를 내밀며 창밖을 여유로이 바라보는 그 아저씨. 아아..... 그 순간 남자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 부르르 엄청난 살의를 느꼈다.


안경점에 갔더니 코다리 땜질하고 도색하는 데 이만오천 원. 일주일 넘게 걸린단다. 안경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인가. 안 경황없슴 장님인데. 콘택즈 렌즈 값으로 다시 삼만오천 원. 도합 6만 원의 공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순간 나는 다시 그 남자를 떠올리며 살의를 생, 각, 한, 다. 그리고 또다시 생각한다. 이따위 사소한 것 하나에 분노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속 좁은 가 하고.


헛헛한 하루 헛헛한 인생. 카드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테지. 카드 결제, 할부 인생. 한숨. 멍하니 올려다본 푸른 하늘에 흰 반달이 아스라이 떠있었다. 날 위로하는 반달. 오늘은 네가 반달로 떠도..... 시 한 구절을 읊조리며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IV



전철 타고 귀갓길.


갑자기 전철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반대편 중앙에 70대로 보이는 사내가 서서 자리에 앉은 이십 대 여성에게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열차 칸이 떠나가라 이년 저년.


낯짝 좀 보려고 돌아봤더니 짜리 몽땅 배불뚝이 불도그처럼 생긴 못난이다. 생긴 대로 논다더니 쓴웃음이 났다. 옆자리 외국인 몇몇이 대체 무슨 일인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사내를 쳐다본다.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에게 몰렸다. 자신을 쳐다보는 걸 눈치챈 남자는 기가 살아서 더 방방 떴다.


-어린년이 싹수가 없어!

-나이도 어린 게 감히 어른을 뭘로 보고. 어른한테 그 따위냐?

-넌 아비 에미한테 그렇게 배웠냐?


남을 무시하고 제압하려들 때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진상 꼰대 한남들의 고정 레퍼토리.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남자의 입에 냄새나고 더러운 양말을 쑤셔 박는 상상을 한다. 남자의 멱살을 잡고 그 치의 똥배에 어퍼컷을 먹이는 상상을 한다. 남자의 입을 틀어막고 멱을 따는 상상을 한다.


전철이 정차를 하고 문이 열렸다. 그때 여자가 뭐라 뭐라 했더니 남자 내리려다 말고 되돌아서서,


- 뭐야? 어린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너 이리 와 봐. 본 때를 좀 보여줘야겠어.

- 야! 너, 나와! 따라 내려!


남자는 여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다가섰다.


저 새끼가ㅡ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냅다 남자를 향해 걸음을 옮긴 그 순간 전철에 올라탄 노년 여성이 득달같이 남자 앞을 가로막았다.


- 아저씨. 거 왜 그래요? 싸우지 말고 그냥 내려요.


주위에 서 있던 서너 명이 사내를 에워싸자 사내는 찔끔한다. 그러더니 마지못한 척 못 이기는 척 내 한 번 봐준다는 허세 작렬 제스처를 쓰더니만 전철 문이 닫히기 직전 냉큼 내렸다.


어이없었다.


진상. 꼰대 미친놈 새끼. 지질한 놈. 한심한 놈.


노년 여성이 어린 여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주위에서도 저런 인간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한 마디씩 거든다. 하지만 이 날 전동차에서 할아버지 뻘 남성에게 어처구니없이 당한 봉변과 언어폭력은 그녀에게 마음 깊이 상처가 되어 남을 것이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ㅡ대한민국에서 '나이 어린', '젊은, ' "여성'은 이런 일상의 폭력에 숱하게 시달린다.

모욕감과 분노라는 응어리를 지고 사는 삶이다.


귀갓길 똥 밟았다. 내 귀를 씻고 싶은 밤.



V



말끝마다 어른 어른하는데 나이 갑절 처먹었다고 다 어른인 거 아니다.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모르는 남에게 처음 보는 이에게 반말로 욕으로 하대하는 인간은 어른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런 인간은 나이가 한참 많아도 싸가지가 개만도 못하니 개무시해 줘도 된다. 싸가지 싸가지 하는데 나잇값 못하는 중늙은이들이야말로 정작 싸가지를 시궁창에 내다 버린 인간들이다.


웃기는 일은 이 나라에서 싸가지는 언제나 나이 어린 사람에게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싸가지는 몽땅 쌈 싸 드시고 찜쪄드시고 회 쳐드신 예의실종 중년 노년 한남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얼마나 못났으면 꼴랑 나이 하나 더 먹은 걸 내세워 강짜를 부릴까. 주제파악도 못하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이런 인간들은 어른이 아니라 인간실격이다.


걸핏하면 뉘 집 아비에미를 물고 넘어지는 인간들의 속셈은 뻔하다. 자신은 네 부모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너는 무조건 날 부모처럼 섬겨라라는 억지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처음 본 이를 게다가 이처럼 경우 없고 무례하며 상스런 사람을 부모 나이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친부모 대하듯 하는 것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오히려 어른 대접 부모와 같은 대접을 받고 싶은 인간이 타인에게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대접해야 하는 법이다. 솔선수범해야 한다. 나이 먹은 거 하나로 대우받고 싶으면 먼저 그 나이에 맞는 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 남자들은 거꾸로 간다. 나이 먹을수록 개가 된다. 나이 쳐드신 걸 갑질 프리패스쯤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나잇값이 똥값이다.


툭하면 남에게 싸가지가 있네 없네 아비에 미 타령에 부모를 들먹이는 인간들이 상대를 정말 제 자식처럼 여길까. 어리고 젊은 여성을 제 딸처럼 생각했다면 그런 반말과 쌍욕을 했을까.


만일 남을 제 자식처럼 여겨 그랬다면 그 자는 자식에게 서슴없이 막말을 하는 돼먹지 못한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종자들은 제 편할 때만 제가 유리할 때만 부모 찾고 가족을 들먹일 뿐이다. 가'좆'같다.


어찌 된 게 한국 사회에는 이런 진상 꼰대들이 넘쳐난다. 나이 어린 젊은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여성을 발톱의 때 정도로 업신여기는, 낯 모르는 사람이라도 여자라면, 나이가 어리면 함부로 대하고 반말하고 욕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성차별주의자 연령 차별주의자 중년 노년 한남들을 거리 곳곳에서 마주친다. 쓰레기다. 공해다.


이 문제적 종자들은 대개 50대 이상 60-70대 남자들. 그러니까 전후 세대. 베이비 부머 세대. 고도성장기에 자란 세대라는 것에 주목한다.


워낙 인구가 많은 세대라서 이런 말종들의 비율이 해당 세대 안에서는 적게 보일 지라도, 전체 말종들 사이에 차지하는 비중과 우리가 마주치고 전해 듣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을 참착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이들 말종과 달리 상식을 탑재한 이들도 이들 세대 안에는 많을 터인데도, 이 같은 몰상식한 문제적 인간들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떤 말로 포장한들 이들 세대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인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세대는 전쟁 후유증과 급속한 고도산업화의 희생양으로 정신적으로 병들었거나( 우리 사회의 사회적 집단 PTSD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때도 있다) 또는 시대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인이 되면 현명해진다는 거 다 거짓말이에요.

염치가 없어지지요. 그래서 꼰대가 됩니다."

-채현국 선생




나도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될 텐데...

미소와 예의와 배려를 놓치지 않고 알아차려야 할 텐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염치를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존경할 만한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 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남에게 민폐나 끼치는 노인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듣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7ixueqb1F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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