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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상상력의 아름다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정신

by 홍재희 Hong Jaehee



고등학생 때다.


지리멸렬한 고등학교, 자로 잰듯한 입시 공부에 흥미를 잃고 대포생이 된 나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다가 벌을 서거나 학교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만 읽었다.


당시 학교 도서관에 왜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정신 >그리고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도서관 사서의 취향이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


여하튼, 교과서를 펼쳐 놓고 몰래 막스 베버의 책을 읽다가 선생에게 걸렸다. 그 길로 교무실로 불려 갔다. 가방조사를 당했다. 나의 투쟁과 칼 마르크스까지. 줄줄이 털렸다. 책을 보더니 소갈머리 벗겨진 꼰대가 방방 떴다.


- 어쭈, 이것 봐라 , 너, 이 따위 불온서적 어디서 난 거야?

- 이거요?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건데요.


말문이 막혀 헛기침을 하던 소갈머리.


- 그... 그래? 어쨌든 수업 시간에 교과서는 안 보고 딴 책을 읽다니! 너 수업 태도가 그게 뭐야! 응?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말이야. 대학 안 갈 거야? 아주 포기했냐?

- 막스 베버도 히틀러도 칼 마르크스도 교과서에 나왔는데요. 그래서 더 알고 싶어 책을 찾아 읽는 게 뭐 잘못 됐나요?

- 뭐야!! 이게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답이야? 응? 네 눈엔 선생이 우습냐?


응, 우스워. 할 말 없으니까 냉큼 꼬리를 내리기는. 등신. 속으로 그를 얼마나 경멸했던지. 너 따위가 사회 선생이란 게 부조리의 극치야.


교과서에 나온 막스 베버란 고작 몇 줄이 다였다.

'프로테스탄트는 루터주의, 칼뱅주의'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청교도적인 금욕주의'.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시험에 나오면 외워.

그냥 외워.

A = B.

이 따위로 달달 암기나 하고 적이 한심했다.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알고 싶어 책을 찾아 읽겠다는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 선생들이란 게 거품 물고 지랄들이나 하고.


막스 베버를 읽는 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하아...

21세기 군대에서도 여전히 이런 식이라면. 소갈머리 꼰대가 아직도 전국 팔도에 바퀴벌레처럼 많구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

교육과 군대의 문화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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