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단상

따로 또 같이

각방 예찬

by 홍재희 Hong Jaehee




"성격은 일생 동안 형성되는데, 두 유형의 사람들로 도식화할 수 있다.

일단, 타인에게 열려 있는 일종의 사회적 스펀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은 가까운 사람들이 없으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공허해한다.

다른 유형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사람들인데, 이들은 혼자 있는 것을 편안해하고, 자신의 소중한 자립성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타인과 친밀하게 교류하기 전에 매우 신중하게 생각한다.

애정 관계만 봐도 두 유형은 극명하게 다르다.

전자의 사람들은 사랑하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쳐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지만, 후자는 관계가 너무 깊어질까 봐 두려워 관계를 통제한다.

커플 관계에서 거리 두기는, 관계를 거부한다는 뜻이기보다는 커플로 살아가는 한 방식이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자는 전자, 남자는 후자 유형에 가깝다. 평균적으로 여자들은 사랑에 자신의 전부를 걸며 이후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각방 예찬> 중에서




책을 읽다 생각해 보니 나는 명백히 후자 유형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도 독립심도 강했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중고생 시절 학교를 다닐 때 밥도 같이 먹고 손 잡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하교도 같이 하고 모든 걸 같이하는 주위 여자애들이 정말 힘들었다. 사는 곳이 이웃이라 매일 집에 같이 가자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도저히 못 견뎌서 나 좀 혼자 가면 안 될까 했다가 그만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걔를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혼자 좀 있고 싶었는데.



대학 다닐 때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고 같이 스터디하고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함께 마시고 하는 애들 보면 피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학과 여자애들 사이에서 난 자연스레 왕따가 되어 있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혼자 스낵을 사들고 학교 뒷산 공터에 올라 혼자 공상을 하고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꿀맛이었다.



연애할 때 매일 하루가 멀다고 전화에 문자를 주고받는 애들이 정말 신기했다. 나한테 그랬으면 벌컥 짜증을 냈을 거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그건 사랑의 확인이라기보다는 지나친 간섭이니까.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남자에게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다리가 없어 발이 없어 내가 어린애야 네가 뭔데 날 데려다준다는 거야. 씩씩거리는 날 보며 아마도 남자는 정말 성격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거다. 넌 내가 전화도 안 하는 데 궁금하지도 않냐 상대가 물었다. 응 뭐 그다지..: 잘 지내고 있겠지 정 궁금해지면 연락했겠지 아닌가? 넌 참..... 쿨하다 그는 혀를 내둘렀다.


나 같은 사람은 전자의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다. 실연당해서 울고 불고 주위 친구들까지 제 문제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애들을 보면 적이 피곤했다. 우주가 온통 사랑과 연애 남자로 돌아가는 애들 줄구창창 똑같은 레파토리의 연애담 이야기를 듣는 것도 너무 지겨웠다. 여자라면 당연히 관계 중심이니까라고 착각하는 남자들이 미주알고주알 신세한탄 늘어놓는 것도 정말 피곤했다. 다들 왜들 저러는지 이해를 못 했지만 내가 저 성격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감정이지 하는 생각으로 공감했다.



나는 관계를 통제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내 자신과 삶에 대한 자기 주도권을 잃거나 자아를 상실한다는 기분이 들면 더더욱. 알고 나면 가까워지면 서슴없이 경계를 풀고 거리낌 없이 치고 들어오는 사람처럼 날 공격적으로 만드는 유형도 없다. 돌이켜 보니 나와 같은 후자처럼 거리 두기가 되는 사람을 만날 때 좀 더 말도 부드러워지고 마음도 편안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오래 친구로 남는다. 내가 나 자신일 수 있고, 내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거나 무례가 아닐 수 있고, 있는 그대로 내 자신을 보일 수 있어서.



주위에서 보면 너무 극단적인 전자와 후자가 만나면 그 관계는 파괴적이다. 가장 좋은 커플은 전자와 후자가 적당히 섞어있는 중간지대 회색지대 성향의 사람들. 자신과 다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리 두기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인 듯. 뭐든 지나치고 극단적이면 안 좋다.


대부분이 여자는 전자의 유형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생각한다. 편견이다. 사랑이 전부인 남자도 있다. 혼자서는 공허해하는 전자인 유형의 남자를 수두룩하게 알고 있다. 나는 그 전자가 아니라서 남자를 만나면 우리는 너무 같아서 멀어진다. 여자끼리는 다 전자라고 믿는 여자들이 날 만나면 오해하고 상처받는다. 하여간 나는 내가 원해서도 아닌데 날 바꾸려고 들고 이해 안 가면 이렇다 저렇다 규정짓는 사람을 보면 발톱을 세운다. 이래저래 성격 이상하고 성질 더럽거나 희한하거나 독특한 사람으로 딱지가 붙는다. 그러든지 말든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이렇고 한국인은 이렇고 외국인은 이렇고. 다 고정관념이다. 만나는 상대 개개인마다 다 다르다. 어디든 누구에게든 예외는 있다. 제발 그 사람답게 살도록 거리를 두는 예의를 지키자. 모르면 좀 물어보던가. 제가 믿고 있는 고정관념, 즉 남도 자신과 똑같을 거라고 간주하고 만나는 타인마다 당연히 제 관념으로 규정하고 설레발을 치는 순간 꼰대가 된다.


어릴적부터 오해와 편견과 부딪히며 나와 너무도 다른(!) 남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투쟁하고 살아온 나로서는, 남들이 다 자기와 같다고 쉽사리 단정 짓는 인간들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의 인생이 자로 잰 듯 평균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쥐뿔도 안 되는 인생 경험으로, 세상과 타인을 재단하는 걸 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 혼자 있고 싶을 때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을 때 만남보다 관계보다도 음악만 한 치유제가 없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무중력 상태에서 깃털처럼 가라앉는 마음. 고향도 없지만 고향땅을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내 마음은 바람결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