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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어떤 산책과 어느 소풍

by 홍재희 Hong Jaehee



백발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한 방향으로 느릿느릿 돌고 또 돌았다

몇 바퀴를 돌까 궁금했다

하나 둘 셋 일곱 바퀴까지 세다가 지겨워져서 그만두었다

노인은 날마다 이곳을 돌고 있는 것일까

노인은 나무를 닮았다 지팡이를 닮았다

사람은 새순처럼 태어나 푸른 잎사귀처럼 살다가

늙으면 갈라지고 딱딱한 나무껍질처럼 나무가 되는구나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나무의 양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흙이 되고 싶다




남녀 한쌍이 벤치에 앉았다

양복을 입은 남자와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봉지에서 떡볶이와 만두를 꺼내놓고

와인 한 병에 와인잔 두 개를 차렸다

남지는 와인을 따서 여자에게 따라주었고

여자는 나무젓가락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스쳐 지나가며 얼핏 귀에 꽂힌 것

두 사람이 서로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더욱 궁금해졌다

저 둘은 무슨 사이일까

여긴 어떻게 알고 왔을까

누가 오자고 했을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그러다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정장 빼입고 와인에 와인 잔까지 챙겨 왔는데

떡볶이와 만두 포장이라

잠깐만 와인에 떡볶이와 만두가 어울리는 궁합인가?

아무렴 어때

둘이 좋으면 그만이지

둘이 좋으면 뭐든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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