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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나는 잘 늙어가고 싶다

나이듦에 대하여

by 홍재희 Hong Jaehee


일주일 사이에 동네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사체를 여러 번 목격했다.

계단을 오르다가 발 밑에 미라가 되어 있는 작은 비둘기, 쥐포처럼 말라버린 생쥐,

그리고 땅바닥에 누군가 그린 낙서처럼 보였던 지렁이까지.

나는 죽은 것들을 보면 발 길을 멈추고 서서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생명을 잃은 이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을 때를 상상한다.

동시에 생명이 빠져나간 후의 이것은 무엇일까... 또 생각한다.




나는 어릴적부터 죽은 것들 죽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땡볕 아래 몸뚱이를 뒤틀며 서서히 죽어가던 지렁이

부리에서 거품을 물고 졸듯 죽어가던 병아리

차에 치어죽은 고양이

납작하게 말라 쥐포가 되어 있던 쥐


아이보다는 노인에게 더 시선이 갔다.

늙은이의 쪼글쪼글해진 입술

나무 등걸의 나이테 같던 주름

파뿌리처럼 시든 흰머리

검버섯이 피어난 나무 껍질 같은 손등


찬란한 젊음을 소유한 청년보다 시들어가는 노인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나이들수록 더 그렇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 단 한 번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연습없이 태어나 예외없이 죽는다.


나이든다는 것 늙는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점점 쪼그라들고 줄어들고 쉬어가고 느려지다가 결국 멈춘다는 뜻이다.


아프고 힘들고 서러워지는 것이다.


쇠락하고 병들어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가꾸고 돌보고 지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기왕이면 잘 죽고 싶다.


그런데 잘 죽으려면 먼저 잘 늙어야한다.


젊어 보이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과 싸우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나는 젊어지기보다 잘 늙어가고 싶다.





오가다 우연히 잘 늙어간 노년을 만난다.


담백하고 단정한 노년을 만날 때마다 잠시 멈춰서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 고웁다. 아름답다.


레이스 양산 들고


하얀 모시 옷에 백구두 중절모


꽃분홍 바지에 꽃무늬 블라우스


단아하고 깔끔한 멋쟁이 할매 할배


그가 지나온 세월에 머리를 숙인다.


나도 저렇게 깨끗하고 맑게 곱게 늙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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