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골 남산 산책
완연한 여름 일요일.
집으로 가는 길에 무심코 남산을 도는 순환버스를 탔다. 답답해서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서든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볕이 너무 뜨거워서였을 것이다.
산모롱이를 돌아 남산 타워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길가에 앉아 하릴없이 사람들을 지켜본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정류장. 히잡을 쓴 동남아 여인들이 셀카봉을 든 중국 관광객이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라틴 관광객이 오고 갔다.
가끔씩 바다 건너 먼 나라로 떠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칠 때 모르는 낯선 언어가 쏟아지는 이국땅을 헤매고 싶을 때 나는 이곳에 온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떠나고 싶은 역마살을 잠재우며 이국에 대한 향수를 달랜다. 그들의 얼굴 그들의 언어 그들의 눈빛 그들의 숨결 그들의 냄새.
남산을 걸어내려 간다. 봄이면 흰 벚꽃이 눈부시던 벚나무는 이제 눈길을 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여름 나무가 되었다. 숲은 멀리서 보면 단지 한 덩이 푸른색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눈여겨보면 서로 다른 모양 잎사귀를 단 갖가지 나무들이 서로 이웃하고 있다. 신기할 정도로 나무마다 이파리하나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이토록 다르지만 그런데도 한데 어울려 숲이라는 하나가 되는 나무들. 사람도 다를 바 없는데 다르다고 싸우는 존재는 인간뿐인 듯.
벚나무는 무성한 잎사귀를 달고 태양을 향하고 그 아래 단풍나무에 푸른 단풍잎이 별사탕만큼 자랐다. 새삼 깜짝 놀란다.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수천수만 별사탕. 아마도 넉 달 뒤면 저 푸른 별사탕은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겠지. 시간 그리고 세월.
옆자리에 앉은 노부부. 부채를 부치며 음악을 듣는다. 살랑살랑 사랑이 찾아와 살랑살랑.... 간드러진 목소리 뽕짝 가락이. 노래가사에 귀를 기울이다 낯간지럽고 구구절절한 내 님타령에 애끊는 사랑타령에 그만 피시식 웃음이 나왔다.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책을 편다.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고민을 털어버리고 싶을 때 마음이 울적해질 때 현실을 떠나 어느 한곳에 집중하고 싶을 때면 이따금 집이나 도서관이 아니라 산에서 숲에서 책을 읽는다. 여름 나절에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즐거움. 가장 평온한 휴식. 별사탕에 어울리는 스타. 데블스 스타. 한여름에 요 네스뵈는 뜨겁고도 차갑다.
"일요일 작별."
비가 올랑 말랑한 날, 바람이 비구름을 몰고 오는 날, 비가 그친 후 바람 부는 날, 오늘 같은 날이 좋다.
세상 모든 색이 또렷해진 하루. 탁하고 비루한 감정 찌꺼기가 씻겨져 내린다.
이웃한 벗과 요즘 시간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을 한다.
산책할까.
느지막한 저녁에 야심한 밤에 산책로를 숲길을 걷는다.
의자에 앉아 아름드리나무 아래 반짝이는 서울 도심 야경을 내려다보는 맛.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서로 말없이 또는 실없는 농담으로
때로는 두서없는 수다로 아니면 음악을 들으며
해 질 녘 그리고 밤과 조우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달이 걸려 있었다.
숲이 숨을 내쉬고 들이쉰다.
오늘 밤은 개구리 소리가 요란했다.
밤이 꿈꾸는 시간.
하늘에서 밤이 날개를 펴고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