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KOFA)
내 영화 편력은 유년시절 만화영화를 보려고 아빠손을 잡고 따라간 극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울 사대문 근방에서도 낙후된 지역이었던 우리 동네에는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가정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 또래보다 조숙했던 나는 두 편을 동시상영하던 삼류 재개봉관에서 곰보빵 하나와 우유로 허기를 때우며 하루 종일 슬픔을 달래고 꿈을 키웠다. 중학생 주제에 미성년자 불가 영화를 몰래 보며 어른들의 세계를 그때 다 알아버렸다.
그리고 나의 영화 편력은 또다시 길을 떠난다. 스무 살 성인이 되어 TV 브라운관에서나 봤던 수많은 걸작을 비디오, DVD가 아니라 극장 스크린에서 원본 프린트로 만나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감동은. 그렇다. 파스빈더와 파졸리니 그리고 클레르 드니, 아네스 바르다, 이치가와 곤과 마스무라 야스조는 내게 있어서 진정 시네마테크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만날 수 없었으리라. 내 영화 편력의 진정한 8할은 바로 시네마테크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CGV와 같은 멀티플렉스가 영화관의 대명사가 되고 난 후 시네마테크는 아프고 병들어 골룸이 되어갔다. 세상을 밝히고 생각을 깨우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좋은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세상에서 발 빠르게 돈을 벌어다 주는 패스트푸드 같은 영화만이 회전초밥 같은 극장만이 즐비해진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극장이, 흥행 불패의 신화를 쓸 것만 같았던 멀티 플렉스가 코로나가 세상을 강타한 후 휘청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영화관의 역사도 세월의 역풍을 피해 갈 수는 없는가 보다. 필름이 디지털로, 비디오가 DVD로 스크린이 다시 OTT 플랫폼으로. 이제 영화는 수고롭게 극장으로 발품을 팔지 않아도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며 아무 때나 소비할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 이제 극장이라는 사회적 문화 공간에서는 블록버스터와 같은 초대형 오락 영화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스펙터클이 아니라면 일반 대중은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영화는 더 이상 은밀한 제의도 아니며 의식의 공간도 사색과 성찰과 꿈의 대상도 그 뭣도 아니다.
그러나 진정 새로운 것은 과거의 낡은 것들과 사라져 가는 것들 안에서 잉태된다. 수년 전 뉴욕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시네마테크가 생각난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시네마테크. 그때 극장에서는 <록키호러 픽쳐쇼>를 상영 중이었다. B급 영화의 전설인 영화가 21세기에도 상영 중이라니. 전율이 일었다. 대부분의 예산을 기업(!)의 후원과 개인 기부금으로 거뜬히 충당한다던 뉴욕의 시네마테크 극장.
한국의 시네마테크 현실을 돌아본다. 과거의 환영이 되어버린 고전 영화, 박제가 된 필름. 오로지 새것 비싼 것을 갈망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쉽게 빨리 잊혀간다. 한국, 이곳에서는 오늘이 아닌 어제, 과거는 끊임없이 지워지고 서둘러 사라진다. 그리고 시효가 지난 것은 곧바로 폐기 처분된다.
그러나 미래라는 이름의 현재, 그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인간들의 욕망은 끝까지 채워지지 않고 불완전 연소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리석게도 다시 돈이 복제해 낸 짝퉁 과거를 소비하며 향수에 젖는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뒤늦게 당도한 눈물, 조문객 없는 부고. 슬프다. 우리에게는 과거를 호출하는 공간을 향수할 자격조차 없는 것일까.
구 허리우드 극장. 낙원상가. 게이바. 그 허름한 뒷골목. 그리고 시네마테크. 비루한 현실에 지친 영혼들을 어루만지던 살 지우던 공간들이 하나둘 사라져 간다. 도시의 방랑자, 거리의 산책자들이 어둠 속에서 잠시 사색할 수 있었던 공간. 나의 가슴을 한 권의 책처럼 열어준 시네마테크. 이제 그 불빛이 꺼져간다. 영화의 아우라가 사라진 곳을 돈이 채웠다.
나는 애도의 촛불을 가슴에 하나 지피고 오늘도 시네마테크에 간다.
근래 몇 년 동안 나는 주머니가 궁해질 때마다, CGV와 멀티 플렉스 대신에, 상암에 있는 영상자료원으로 향했다.
만 원이 넘는 영화값은 가난한 예술가인 프리랜서에게 부담이 되는 날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영화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삶이 비루하고 일상이 무료하고 내일이 암담할수록
한 편이 아니라 여러 편을 영화를 하루 종일 내내 보고 싶었다.
비밀스럽고 은밀한 꿈을 꾸는 곳, 그리움이 가득 찬 제의의 공간.
영화관이란 내게는 그런 장소다.
때마침 영화를 갈망하는 나에게 영상자료원은 사막의 오아시스. 시네마테크의 낙원이었다.
모든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
영상자료원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독들의 회고전을 쉬지 않고 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감독들의 명화를 보면서
이 세상에 없는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들면서
나는 바다 건너 저 너머 이 세상 모든 곳을 향해서
과거로 미래로 날아갔으며
그 순간 현실을 잠시 잊고
삶과 죽음과 사랑과 이별과 만남과 상실과 기쁨과 슬픔을
생의 그 모든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불 커진 컴컴한 극장 안에서 살,아,있,음, 을 느꼈다.
영상자료원에서 1920년대 베티 붑의 원조가 된 배우, 클라라 보우가 주연한 무성영화 <IT>을 보았다.
무성영화 시절처럼 라이브로 작곡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무성영화의 자막을 읽으며,
나는 무려 백 년 전으로 돌아갔다.
자연인인 개인의 삶에서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출생부터 성장 그리고 죽음까지 불행이란 모든 불행을 짊어졌던 배우 클라라 보우.
반면 백 년 전 스크린 속의 그녀는 세상의 모든 편견과 장애물에 맞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아이콘이다.
삶의 아이러니. 지독한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It girl. Clara Bow.
"it" defined in the opening as the "quality possessed by some which draws all others with its magnetic fo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