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로 동인천 신포만두
1.
이북에서 온 실향민 아버지 가족 형제는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큰아버지 댁에 매년 제사 때마다 동인천 송월동을 방문했다.
큰형과 의절한 아버지는 수년 동안 당신의 아버지 제사에도 일절 발길을 끊었다. 제 남편도 가지 않는 큰집에 올망졸망한 자식들 손을 잡고 서울에서 1호선을 타고 동인천역에 내렸던 어머니. 남편도 오지 않은 큰집에서 이북식 만두를 빚고 있었던 어머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부모 제사를 나 몰라라 하는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며느리 도리를 한답시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부모 그것도 결혼할 적에 이미 세상에 없었던 시아버지와 북에 있었을 시어머니 제사상을 차리러 가는 어머니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음식을 만들고는 제사상에 절을 하지도 못하고 바깥에 서있던 큰어머니와 어머니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부조리에 너무 화가 났다.
제사상이 차려진 안방에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조부모의 낯선 흑백사진 영정이 걸려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세상을 뜬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무섭기까지 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콩가루 집안의 대물림이겠거니.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큰집에 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 집안의 슬픈 가족사를 알게 되었다. 어느 가족이나 그렇듯 모든 가족은 저마다의 불행이 있는 법이다.
2.
어린 시절. 설 연휴 때마다 찾아간 인천. 내 기억 속 인천은 항상 춥고 맵찬 바닷바람이 비릿했다. 인천 하면 언제나 그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뺨을 후려치는 얼얼한 바닷바람. 연안부두에서 불어오던 스산한 겨울바람에 코끝이 빨개져 발을 동동 구르고 엄마 손을 재촉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인천이라는 두 글자에 동인천 송월동과 제물포 신포만두를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아버지가 말끝마다 읊어 댄 연안부두와 자유공원과 맥아더 동상과 신포시장과 차이나타운 그리고 부평.
내게 인천은 실향민 디아스포라의 고향이다.
구한말 청일 열강의 조계지에서부터 미군부대 이북 실향민까지. 뜨내기와 잡역부와 이주민과 토박이가 악다구니하고 일본말과 중국말 한국어와 영어가 오고 가고 이북 사투리와 경기 사투리가 김치 냄새와 버터 냄새가 뒤섞인 온갖 매혹적이고 이국적인 것들의 항구.
아아, 나는 살아본 적도 없는 인천에 향수를 느낀다.
옛 것과 새것이 뒤엉켜 살아가는 곳에, 익숙하고도 낯선 것들이 뒤섞인 공간에 늘 끌리는 탓이다.
이제는 인천의 낡고 쇠락해 가는 구도심이 되어버린 동인천. 도시의 중심이라 중구라 불렸던 곳. 개항로에서 인천맥주를 만났다. 해 질 녘 양조장에서 생맥주 한 잔 사서 들고 옛 도심을 거닐었다. 맥주 두 잔에 알딸딸 기분 좋게 취해서 인적 끊긴 거리를 산책한다. 저 하늘에 붉은 달이 돋고 나는 호젓하니 우수에 젖는다. 자유공원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아래서 연안부두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광경을 항구에 밤이 날개를 펴고 닻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리웠다.
그리움은 상실의 감정이다. 이제 여기 없는 것들,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장소에서 나는 그리움을 발견한다. 시간이 살아 숨 쉬는 공간. 기억하고 추억하는 장소. 백여 년이 넘는 역사가 세월이 공기 속에 떠다니는 것만 같다. 청라니 송도니 인천의 신도심으로 주가 상승 중이지만 맨땅에 신기루처럼 솟아난 고층 아파트단지는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건 도시가 동네가 아니라 부동산 자산일 뿐이다.
내게는 인천 하면 영원히 이곳이다.
127년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애관극장의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아버지를 추모하며 평양냉면 한 그릇과 백여 년 전 호황을 누린 인천의 민어잡이를 상상하며 신포시장에서 민어 전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