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간의 외유

굴업도 비박 야영

by 홍재희 Hong Jaehee



올해는 연거푸 어머니 간병을 하게 되었고 추석 연휴를 지나 9월을 병원에서 시작하여 10월을 병원에서 맞이했다. 간병과 일 사이에 잠깐 시간적 여유가 생겼던 일주일. 앞뒤 잴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즉시 배편을 끊고 짐을 싸고 집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평정심이 심적 여유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여행이란 모든 것이 완벽한 타이밍일 때 떠나는 것이 아니다. 먹구름 사이로 갑자기 파란 하늘이 얼굴을 비출 때, 흐리고 어두운 하늘에 불현듯 햇살이 한줄기 비칠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내 경험상 여행은 오히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떠났을 때가 더 기억에 남았고 어려움을 견디는데 더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쳤을 때면 아플 때와 잠이 필요할 때를 빼놓고는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 혼자 나무가 즐비한 숲으로 도서관으로 영화관으로 간다. 우울감에 사로잡히거나 무기력에 빠졌을 때 방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 상태가 악화될 뿐이다. 말 그대로 불안에 잠식된다. 반면에 환경을 바꾸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삶의 기쁨을 발견하거나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 상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다.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오롯이 자신과 대면하다 보면 내가 떠나온 곳이, 지리멸렬한 일상이, 지긋지긋한 관계가 새롭게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 가족과 친구 같은, 관계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에게 집중하고 대화를 이어가려고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피곤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스스로 내면에서 에너지가 차오르는 사람이고 이런 성향의 내게 여행은 더없이 좋은 길벗이었다. 여행길에서는 동면에 빠졌던 설렘이 눈을 뜨고 호기심이 숨을 쉬고 즐거움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뭣보다 가슴이 설렌다.


설레다.


그 얼마나 사랑스러운 감정인가.


어릴 때는 설렘이라는 감정이 너무 흔해서 소중함을 모른다. 세상만사가 놀라움과 호기심의 연속이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면 알 것이다. 그런데 설렘은 어릴 땐 싸지만, 나이 들수록 비싸진다. 돈으로 사려면 과소비해야 하고 돈 안 쓰고 느끼는 건 원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나이 들수록 설렘을 느낄 일도 줄어든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길들여져 기계적으로 하루 일과를 수행하고 있을수록 설렘이란 감정은 서서히 죽어간다. 돈으로 설렘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유통기간이 매우 짧다. 물질로 얻는 설렘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때뿐이다. 익숙해지면 설렘은 사라지고 만사가 시들해진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설렘을 느끼고 싶다면 여행만 한 게 없다. 쳇바퀴 같은 삶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무얼 봐도 설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불평불만에 차있다면 매사에 무감각하고 심적으로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숲으로 자연으로 낯선 곳으로. 온전히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곳으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국의 언어가 범람하는 곳으로.


여행길에서 특별한 경험과 추억을 쌓으면 그 기억은 평생을 간다. 게다가 언제든지 꺼내 쓰기도 쉽다. 돈도 안 든다. 그저 날씨 좋은 날 벤치에 앉아 한 번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한구석이 두근거린다. 설렌다. 삶에서 설렘을 자주 느끼는 사람일수록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다. 행복하다고 느낀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인 것이고 그 또한 부단한 연습이다. 뭣보다 여행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감정인 설렘을 살 수 있다.



또 가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통해 인생 전체를 바꿔 놓기도 한다. 심지어 나이가 어릴수록 더 싸다. 그러니까 한 살이라도 젊을수록 여행을 더 자주 다녀야 한다. 여행은 가슴이 흔들릴 때 떠나야 한다. 두 다리가 후들거릴 때 떠나면 너무 늦다. 설레고 싶다면 살아있고 싶다면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나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치일 때, 내 의지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병실 창문 밖으로 파란 하늘을 보며 노을빛에 물드는 도시를 볼 때마다 내가 간직한 추억을 소환했다. 잠든 어머니 옆에 누웠을 때 지금까지 내가 떠났던 그 모든 여행을 하나씩 떠올렸고 깊이 음미했다. 내 몸은 병실 안에 매여있지만 내 마음은 여행지를 걷고 있었다. 창틀 아래로 흔들리는 아침 햇살을 보고 피에스타가 한창이던 스페인의 말라가를, 병원 옥상에서 까마귀 울음소리에 삿포로 대학 교정을 날아가던 까마귀 떼를, 덕적도 밧지름 해변에서 마주친 주민의 얼굴에서 필리핀 팡글라오섬에서 내게 말을 걸던 어부를. 그러면 다시 마음이 두근거렸고 설렜고 그리웠고 뜨거워졌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섬으로 떠났고 처음 가본 길을 걸었고 낯선 곳을 배회했다. 굴업도에서 소야도 그리고 덕적도에서 산 위에서 해변에서 숲에서 홀로 텐트를 치고 지낸 닷새.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 시간이야말로 내게는 자유이자 치유 그 자체였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왔다 쓸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듣는 것. 구름이 떠가는 것을 넋 놓고 올려다보는 것. 오감으로 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느끼는 것. 그저 그 안에 머무는 것. 그 순간 슬픔과 기쁨은 하나였다. 이윽고 내가 짊어진 고민이 하찮아졌으며, 걱정과 불안이 시시해졌으며, 모든 인간사가 터무니없이 작게 느껴졌다. 우주의 섭리에 비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삶도 그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자 스트레스는 바다에 씻겨 떠내려갔고 번민은 새소리에 묻혀 사라졌으며 우울은 붉은 노을과 밤하늘의 별들이 데려가 버렸다.


설레고 설렜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