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내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해놓은 밥이 쉬어서 내다 버리기까지 했다. 남은 찬밥은 냉동고행. 그런데 냉동고에 밥을 얼려놓았다는 사실 자체도 까먹었다.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오거나 날마다 밥을 해 먹지 않으면 어느 날 열어본 냉장고 채소칸에 재료가 말라비틀어져 있다. 죄다 쓰레기봉투행. 장 본 돈이 아깝지만 어쩌겠는가.
그럴 때가 있다. 만사 귀찮아질 때. 그럴 때 집밥 해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귀찮다. 집에서 빠릿빠릿 잘해 먹다가도 어느 날 귀차니즘이 발동하면 죄다 내팽개친다. 일로 바쁘고 여기저기 나돌아 다녀야 할 때면 끼니를 집에서 꼬박꼬박 해 먹는 것도 일이다. 밖에서도 일하는데 집에서까지 일하기 싫다. 혼자 살면 좋은 점.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 없고. 눈치 보고 신경 쓸 사람 없고. 내가 해 먹고 싶을 때 해 먹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내 마음대로다.
시장에서 깻잎 두 봉지에 천 원. 양이 넘쳐나서 깻잎볶음도 모자라 무침 전까지 섭렵. 이로서 반찬 걱정 따윈 덜었다. 여름엔 오이가 풍년. 오이 다섯 개 천 원. 콩국수에도 송송 썰어 올려 먹고 오이 부추 종종 버무려 무침으로도 해 먹는다. 오이가 찬 성질이라 속을 따뜻하게 보하는 열 내는 부추 같은 재료와 함께 그냥 밥 불려 죽 먹는다. 시장에서 부추 한 단에 천 원. 양이 너무 많아서 부추전 부추전 또 부추전. 부추 말만 나와도 질리게 질리도록 부쳐 먹었다. 물리고 물려서 부추 말만 나와도 토 나올 것 같을 때 즈음 토마토 시금치 파스타로 갈아탄다. 매일 한식 먹다 물리면 양식 중식 일식 잡탕식 아무거나 다 넣은 볶음밥까지. 집밥 해 먹기 싫증 날 때 밥 잘 먹는 비결이다. 뭐니 뭐니 해도 단출하고 소박한 밥상이 최고다.
주말에 들린 어머니집. 어머니가 콩을 불러 직접 갈아 만든 콩물로 콩국수 시원하게 한 사발 드링킹. 어머니의 수고가 담긴 콩물과 김치를 얻어왔다. (내 손으로 콩을 불리고 가는 수고를 할 날이 올까. 김치도 담가본 적이 없는데?) 반평생 죽어라 가사노동만 하다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된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쓰럽다.
어린 시절 한 토막. 어머니가 무심코 지나가듯 말했다. 아플 때는 밥 해 먹기 싫구나, 오늘 또 뭐 해 먹나? 반찬이 없네.... 그 말에 귀에 가슴에 콕 박혔다. 매일 끼니 걱정이 태산 같은 어머니, 딸에게 죄의식을 잔뜩 심어주는 어머니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아빠가 밥 좀 해, 엄마는 왜 맨날 딸들한테만 하소연이야? 아들은 자식 아니니?
365일 날마다 누군가에게 꼬박꼬박 밥상을 차려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무리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게 해야 하는 일이 되고 일상이 된다면? 받아먹기는 쉬워도 해 먹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도 밥하고 요리하고 삼시 세끼 밥상을 차리는 게 하기 싫고 귀찮은 날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날마다 식구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했던 사람. 그게 당연하다고 쉽게 하찮게 사소하게 여겨지는 사람. 엄마. 어머니.
독립해서 내 손으로 돈을 벌고 밥을 해 먹으면서 뼈저리게 깨우친 진실이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어머니에게 밥상을 받아먹는 걸 당연하게 여긴 이기적인 자식이었다는 것. 그 사실이 징그럽게 부끄럽고 몸서리치게 부끄러웠다. 그래서일까. 여자가 아내가 어머니가 해주는 걸 넙죽넙죽 받아먹는 걸 당연시하고 옆에 여자가 있으면 으레 부엌에서 멀어지는 제 밥 해 먹을 줄 모르는 남자 사람만 보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도 화가 치민다.
요즘은 어쩌다가 집에 들를 때 내가 요리를 하곤 한다. 그러면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예의 내 옆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라 잔소리를 줄줄 늘어놓는다. 딸과는 달리 아들이 할 때는 잔소리는커녕 칭찬일색 황송한 듯 받아먹는 어머니에게 와락 성질이 나서 들이박고 싸우곤 했다. 딸년에게는 가르치려 들고 아들에게는 미안해하는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어머니에게 열불이 났지만 그것도 옛날이다. 그 딸년도 늙어간다.
이제는 싸우기보다 그러려니 한다. 안다. 그토록 못 미더운 딸이 이제는 고마워서 그런다는 걸 평생 해먹이기만 하고 받아먹어 본 적이 없어 어색해서 그런다는 걸. 나이 들수록 늙어갈수룩 딸은 어미에게 친구가 되고 아들은 여전히 손님인 법. 어머니의 시계와 자식인 딸의 시계가 다르고 어머니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지만 따로 또 같이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