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주자적 근묵자흑 (近朱者赤 近墨者黑)'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붉은 인주를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말인데
사람은 누구를 만나고 사귀느냐에 따라
함께 벗하고 곁을 주고 함께 하는 사람에 의해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내가 물들어간다는 뜻이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주변을 친구들을 배우자를 보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가족은 예외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친구와 배우자는 선택이다.)
그 사람이 맺은 관계가 그의 가치관이자 인생관 됨됨이인 것이다.
끼리끼리 만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그러므로
자신을 바꾸고 싶으면
삶을 바꾸고 싶다면
좋은 인간이 되고 싶다면
내가 인연을 맺는 사람 내 주변부터 바꿔야한다.
내가 만나고 사귀고 선택한 인연이 나를 만든다.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쌌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모든 사물은 본디 깨끗하지만
어떤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여러 색깔로 물드는 법이다.”
ㅡ부처
모든 인연은 소중하지만 모든 인연이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인연으로 휘둘리고 악연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관계를 끊을 능력도 있어야 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외로워서 함부로 인연을 짓고 관계맺기에 헤프고
혼자될까봐 두려워 불필요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만약 나보다 나을 게 없고 배울 게 없고
내게 알맞은 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걸어가는 편이 낫다.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가 되지 마라.
인생길에 친구는 사실 많이 필요치 않다.
쌓아놓은 인맥이 끊길까봐 전전긍긍하거나 주변에 아는 이가 많다는 걸 친구가 많은 걸 자랑삼는 이들이 있는데 부질없다.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수 백 개라도 정작 생각날 때 부담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친구는 과연 몇 명인가?
내가 슬프고 외롭고 괴롭고 모든 걸 잃었을 때도 말없이 위로해주며 생각날 때 가볍게 한 잔 어때? 하면 혼쾌히 나와줄수 있는 친구. 돈 한푼이 없어도 자격지심 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 나의 실패에 함께 슬퍼하고 나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기뻐해줄 친구 한 두명만 있어도 족하다. 나이들수록 그런 친구, 마음이 맞고 결이 비슷한 진짜 친구는 정말 드물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은 남에게 의존적이지 않다.
외로워도 외로움을 탓하지 않는다. 남 탓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과 외로운 사람은 다르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은 외로워 보일지라도 외롭지 않다.
자신의 외로움과 감정을, 즉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관없다. 타인의 평가가 시선은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나를 제대로 모르거나 진정으로 애정이 없는 이들의 한 마디는 웃어 넘긴다.
타성에 젖은 이들이다. 구태여 잘 보이려고 가까이 할 까닭이 없다.
타인에게 받은 스트레스와 걱정과 근심이 내 집 문턱을 넘기지 않도록
오만 가지 스트레스를 문 밖에 먼지 털듯이 탈탈 털어버린다.
그리고 나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남은 내가 어쩌지 못한다.
생각할 필요도 고민할 이유도 없다.
고민해봤자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건 답이 안나오니 내일 다시 생각하면 되니까.
외로움이란 감정은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기에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
사람은 누구나 외로워 봐야한다.
외롭다라는 걸 받아들이면 편안해진다.
외로움이 자발적인 고독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외로움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것.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버리는 것.
혼자 있음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것.
그리하여 고독을 즐길 줄 알게 되는 것.
독서 음악감상 영화보기 전시 콘서트 관람 산책 요리 운동 여행.
내가 혼자서 즐기는 일상이자 취미다.
둘이 또는 여럿이 함께 하는 것만큼이나 혼자서도 즐기는 맛을 안다.
내가 좋아하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기기도 하지만 이 모든 걸 혼자 해도 능히 즐겁다는 것.
늘 언제나 따로 또 같이.
혼자 있는 시간은 회복하는 시간이고 재충전의 시간이다.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의무감을 덜어내고, 해묵은 앙금을 털고 비우고 마음을 청소하는 시간.
찌꺼기와 쓰레기를 비워서 마음에 여백을 남기는 시간.
그리하여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를 되찾는 시간이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외로움을 스스로 선택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혼자가 될 줄 안다는 것과 같다.
어른이라면 건강하게 외로워질 줄 안다.
혼자 있는 걸 즐길 줄 아는 어른의 삶은 조용하다.
외부가 시끄러울수록 그의 내면은 고요하다.
흔들리되 휘둘리지 않는다.
인연에 연연하는 이들, 매달리거나 집착하는 이들, 인연맺기에 헤픈 이들을 경계하고 멀리한다.
그들의 외로움과 어리석음이 내게 스며들어 나를 나로서 온전히 내 삶을 충실히 살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쓸 데 없는 인연을 만들어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고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그 인연을 끊는 게 더 낫다.
대신 내 일과 내 삶에 더 집중한다.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관계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시선으로 내 삶을 결정하지 않고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외로워질 수 있는 삶을
나는 지향한다.
법정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법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