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수업
기본적인 이론 수업 후 첫 도전. 나무쟁반을 만들었다. 기본 톱 쓰기 드릴 공구 쓰기 못 박기 연습. 지난 수업을 빼먹은 데다 아직 너무 서툴러서 선생 도움 없이는 헤맨다. 팔이 빠져라 사포질에 기름질까지 하고 나니 완성. 강습생들이 만든 쟁반을 한데 모아 늘어놓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참 곱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글이 안 풀릴 때는 차라리 몸을 쓰는 게 낫다. 뭔가 손을 쓰고 몸을 써서 하나를 만드는 것. 참 기분 좋은 일이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뿌듯하다.
톱질하다가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톱밥가루가 날리는 마당에서 톱질하던 아버지. 아버지는 날더러 나무판자 끝을 꼭 잡고 있으라 하셨지. 귀에 연필을 꽂고서 목에 흰 수건을 두르고 대패질을 하던 아버지. 쉬어갈 때면 당신 옆에는 언제나 막걸리 한 통이 있었다.
어렸을 적 집 귀퉁이 작은 창고에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잔뜩 있었다. 대패, 톱, 공구함 등등. 아버지는 어린 동생을 위해 겨울에는 썰매를 만들어주었고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가 닭이 되자 닭장도 지어주었다. 길가에 버려진 망가진 우산을 볼 때마다 주워와 전부 고쳐놓는 바람에 우산장사를 할 만큼 우산이 많았던 기억도 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맨 정신에는 일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집을 고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미장이 일까지 도맡아 했던 손재주 좋았던 당신.
목공 작업장 벽면에 즐비한 공구를 보니 아버지의 독일제 빨간 공구함도 떠오른다. 열면 좌우로 열리고 삼단으로 갈라지던 요술 상자. 그 안에는 망치와 장도리 온갖 드라이버와 나사와 못과 줄자와 테이프와 본드 등 별의별 도구가 들어있었다. 아버지의 공구함은 내 상상의 놀이터였다. 길이도 제각각이던 녹슨 못을 일렬로 죽 세워놓는 놀이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 아버지는 당신의 공구함을 마누라와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했었다. 공구가 하나라도 없어지는 날에는 온 집안이 난리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나도 공구함이 있다. 아버지 공구함 수준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케아 가구를 주문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공구함을 장만하게 되었다. 전동 드릴도 올해 주문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제 목공까지 배우게 된 셈. 나야 아버지에 비하면 새발의 피.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지만 그저 눈대중이라도 하게 되면 좋겠다. 갑자기 슬쩍 웃음이 난다. 운이 좋았다. 뜬금없는 목공의 세계라니. 이 역시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가. 시큰 눈물이 난다. 내 안에 당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