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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밤이 길다

알콜, 술에 대한 단상

by 홍재희 Hong Jaehee



이제 술을 많이 마시거나 컨디션이 안좋을 때 마시면 여지없이 뒷탈이 난다. 내장을 갈갈이 쥐어뜯기는 지독한 술병이 특별부록처럼 따라붙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쓰러진 날 까무룩 정신을 차리고 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고 다시 의식을 차리고 살아있구나를 떠올릴 때쯤이면 언제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고는 꼭 울게 된다.



그 세월 술을 꼭지가 돌만큼 마시고 수많은 밤이 명멸하고 사라질 때마다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괴로움을 잊기 위해 혼자서 자멸하듯이 술을 마신 후 다시 살아있음에 안도했을까. 살아있음을 저주했을까.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기 위해 알코올과 니코틴의 힘을 빌어 행복을 가장하고 즐거움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다보면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조증 상태에서 기어이 선을 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찾으러 떠난 것일까. 알코올을 엔진삼아 어디로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알콜 중독이 되기도 전에 무너져 내리는 내 몸뚱아리를 내려다보면서 입술을 깨물며 씁쓸히 웃는다. 난 죽어도 아버지처럼 되지는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이 고통을 대체 어떻게 버틴 것일까. 그저 살아있기에 지속한 것일까. 아버지는 무관심한 이 세상에서 자기 흔적을 남기려 애쓰며 부질없는 희망을 품고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아아,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아비가 도달하고자 했던 종착지는 어디였을까? 대체 종착지가 있기나 한 걸까. 아니다. 애시당초 이 여행은 종착지가 존재하지도 않는 종착지가 의미 없는 여행이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아버지가 그리고 내가, 아니 우리 모두가 필사적으로 추구하하는 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이 아닐까. 나의 육신이 알코올과 니코틴을 더 이상 받아들일 힘이 없는데도, 그럼에도, 자꾸만 자꾸만 멀리할수록 한방에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TV와 인터넷이 없는 삶. 별다른 오락 거리가 없다. 하룻밤 새 소설책 다섯 권과 그저그런 여행서 한 권을 끝냈다. 조만간 도서관에서 빌린 책 열두 권을 죄 작살 낼 거 같다. 긴긴 밤. 아파서 자리에 누워있으면서 할 일이라고는 공상 아니면 독서. 문명의 이기가 없던 시절에는 다들 이렇게 살았을까. 생각을 뺏길 대상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혼자 사색할 시간이 많아진다. 침묵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 다행이다. 책이라도 있어서. 외로움을 쫓는 데도 절망을 피하는 데도 슬픔을 다스리는 데도 책이 필수다. 책은 말 없이 그저 내 옆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다. 책이 없었다면 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렸을 적부터 나는 항상 그랬다. 고독과 비관에 감당할 수 없이 잠식당하거나 추락하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칠 때 책으로 도피했다. 책 속의 글자 하나 하나를 씹어먹고 핧아먹고 책 속에 난 길을 혼자서 걸었다. 책이 아니면 음악으로 슬픔과 맞서 싸웠다. 그것도 아니면 극장에 혼자 앉아 하루 종일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스크린속으로 숨거나. 황홀한 망각. 비관적인 낙천주의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진리를 추구하기. 세상의 소음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하나에 집중하기. 이것들이 없다면 도저한 어둠이 찾아올때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속절없이 마음을 비우고 그냥 잤을까. 초라고 켜놓고 명상을 해야할른지도 모른다. 밤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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