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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by 홍재희 Hong Jaehee



2024년 8월 11일 일기



페북이 알려주는 과거의 오늘. 내가 끄적거려 올렸던 일기에 댓글을 단 이들 중에 시선이 꽂히는 이름 석 자. 나를 월남바지 아가씨라고 불렀던 영수 오빠그가 남긴 댓글을 읽는다.



"많이 무겁네... 술은 잊으려 먹거나 떠올리려 먹거나 벌어 먹고자 먹거나... 세 번째의 경우가 요즘의 나인듯... ㅎ 어쨌거나 소소한 해프닝이 있긴 했으나 오랫만에 재밌었어 월남바지 아가씨."



불현듯 과거의 한 장면이 휘몰아친다. 도조에서 낄낄대며 춤을 추던 그와 내가 오버랩되면서 추억이 뇌리를 잡아챈다.



오빠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약물을 주사해서 스스로 떠나버린 그이. 침대 위에 누워서 차갑게 식었던 그이. 문득 생각한다. 오빠가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했던 녹사의 간판이 내려오던 날. 외롭고 슬프고 비딱하지만 멋있는 사람들을 위한 은밀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열었던 도조의 문을 닫던 마지막 그 날. 오빠의 지인과 친구들 이웃들만이 초대된 말없이 먹먹하고 쓸쓸하고 즐거웠던 파티. 그리고 용감하게 재기를 꿈꾸며 다시 열었던 오빠의 마지막 가게. 녹사 오리엔탈.



풍운의 꿈을 안고 잘 나가던 회사를 나와 첫 가게를 차렸을 때의 오빠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이태원 터줏대감으로 삼 십 여년을 살았던 그의 인생이 오리엔탈에서 종지부를 끝내게 될 줄은. 스물 다섯 살의 그도, 서른 살의 그도, 심지어 마흔 살의 그 역시 전혀 몰랐을 것이다. 십 년 전의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오빠의 나이가 되어도 이제 오빠는 영원히 나보다 어린 그 나이에 머물러 있겠지. 삶이란 아이러니 없이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누구에게는 명작, 누구에게는 망작 영화 같은 것.



오빠의 식당을 갈 때마다 나는 뭔가 예전과 달라진 공기를 느꼈다. 자주 오라고 했지만 주머니가 궁한 나로서는 매번 간다는 게 적이 부담이었다. 오빠 가게에 내가 카드를 펑펑 긋는 그런 친구가 아닌게 미안했다. 오빠는 신경질이 잦았고, 변덕스러웠고, 가게에 집중하지 않고, 손님들 패거리와 놀기만 했다. 날이 갈수록 무언가 위태위태했다. 오빠는 술이 늘었고 가게에서 매일 술을 마셨다. 까칠하고 더러운 성격이었지만 유독 사람에 대한 잔정이 많았던 사람이라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점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련지 죽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가게가 아니라 밖에서 따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술이 아니면 우리는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 서로에게 통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가. 그는 나의 친구였을까. 나는 그에게 친구였을까. 그저 아는 동생이었을까. 이제는 아무 것도 자신하지 못한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같이 살던 룸메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는 그이. 그에게는 진정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있었을까.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사랑했던 이의 배신, 그럼에도 사랑을 거두지 못하고 실날같은 희망에 기대를 걸었던 어리석은 사람.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 이의 그림자라도 붙잡고 싶어했던 미련한 사람. 뭔가 놓아버린 듯한 그의 태도는 어쩌면 남김 없이 텅비어버린 자신을 돌아보기 두려워서, 아무데도 기댈 데 없이 외로웠던 그가 슬픔에 잠식되어, 헤어나오지 못할 우울과 절망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 였던건 아닐까.



삶이란 때때로 얼마나 잔인한가. 모든 걸 다주고 모든 걸 앗아간다. 모든 걸 다 얻었다 다 가졌다 여길 때 언젠가 이 행복도 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어야하는데. 기대와 열망이 큰만큼 자존심이 너무 강했던 그는 추락을 견디지 못했을꺼야. 그래서 날개 없이 추락하느니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었을 거야. 그런데 오빠. 오빠는 왜 모든 걸 잃어버린 게 아니라 내가 버린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오빠의 모든 게 묻힌 이태원과 경리단의 거리 곳곳을 떠올린다. 언덕배기와 골목 곳곳마다 기쁜 일과 슬픈 일과 아픈 상처가 그리움의 파도가 되어 몰아친다. 추억이 너무 많아서 흘러넘치면 견디기 힘들어진다. 사람은 추억만으로 살면 안 돼. 추억에 파묻히면 현재를 살 수 없게 돼. 과거의 환영과 함께 사는 건 미래가 없는 삶이야. 그래서 그곳을 떠났다. 그대로 과거의 그림자에 매달려 살고 싶진 않았으니까. 모두가 떠나버린 그 곳에 나만 혼자 덩그마니 머물러 있을 순 없으니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해는 떠오르고 나는 살아야 했으니까.


오빠.


오빠가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오빠와 달리 난 내가 그 모든 걸 버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해야 살 수 있었으니까. 숨 쉴 수 있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오래 흘렀는지 몰라요. 한동안 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랜 시간 홀로 웅크리고 울고 있었죠. 가슴이 뜯겨져 나가고 뻥 뚫려 버렸죠. 가슴에서 서걱서걱 메마른 바람소리가 났어요. 오빠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고독했어요. 그래서 더 깊이 더 오래 추락했어요. 그 무엇도 날 위로해주지 못했을 때 세상의 끝에 혼자 서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에 허위허위 걸어 남산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석양을 하염없이 바라봤죠. 저 붉은 노을이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슬픔을 담고 있는 듯 했죠.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어요. 무릎이 꺽였고 나는 흙바닥을 짚으며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 내려놓았어요. 내 뜻이 아니라면 그 뜻에 따르겠다고 아아, 나를 내려놓았어요. 그날 눈 내리는 숲에서 뺨에 닿는 차가운 눈송이의 감촉과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짜디 짠 눈물이 나를 위로했어요. 괴로움을 털어놓지도 외롭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나를 자책하고 또 자책했던 그 긴긴 시간. 아아, 오빠도 아마 나와 같았겠죠. 서로의 눈동자 속에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 그게 오빠와 나였어요. 어쩌면 나도 오빠와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오빠가 떠나기 전 이런 말을 하면서 술 한 잔을 건넸던 기억이 난다.


ㅡ 있잖아. 내가 죽으면 내 장례식은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 지인들 다 불러모아서, 친구들 DJ도 있으니까 끝내주는 음악을 틀어. 맛있는 음식에 여기 있는 술을 쫘악~~ 깔고. 뿅 가는 파티. 파티. 파티. 축제같은 장례식이면 좋겠어. 글고 너 꼭 있어야돼. 넌 월남바지 입고 와서 광란의 땐스를 춰야해. 알지?

- 알았어, 오빠. 딴 건 몰라도 내가 그 약속은 꼭 지킬께.


오빠랑 나는 취중에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이한 일이다. 어제까지도 웃고 떠들었던 사람이 이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다는 것은. 그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의 장례식에서 캡모자를 쓰고 환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가 묻힌 묘비석에 새겨진 이름 석자를 보면서도,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대체 어디로 간거야? 조세프. 그의 카톨릭 세례명. 천주교에서는 자살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런. 오빠는 그렇다면 지금쯤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



오빠의 도조가 없었다면 난 그 시기를 버티지 못했을거야. 마음 붙일 곳 없이 혼자 외로웠던 날 가족처럼 환영해줬던 그 곳. 오빠. 조세프. 이제라도 말해주고 싶어요. 고마웠어요.




금강경 독송을 시작하기 전 세 번 절을 올리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묵상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생각했다.



일체의 있다고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여길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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