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간병 생활 11
어머니가 길에서 미끄러졌다.
21년에 척추수술을 한 환자인터라 급히 택시를 잡았다. 수술한 병원은 고덕동에 있어서 택시로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터라 올초 다녔던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러나 심정지 같은 중증 환자 우선이라고 반려, 정확하게는 거부당했다. 화가 치밀었지만 하긴 낙상환자가 촉각을 다투는 환자는 아니니 수긍이 안 가는 것도 아녔다. 별 수 없이 수술했던 병원을 다시 가야 하나 어쩌나 망설이는데 어머니 당신은 괜찮다고 안 아프다고 집에 가자고 극구 고집을 부렸다. 추석 명절인데 탕국을 끓여야 한다고 불고기감도 재워놓아야 한다며 온통 상차릴 생각뿐인 엄마. 이 고집불통 늙은이!!! 머리뚜껑이 열려서 휠체어 탄 노인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깟 쇠고기탕국이 뭐가 중요하나구!!!
그러니까 장 보지 말랬지!!!!
내가 다 한다고 했지!!!
그냥 먹지 말자고!! 사서 먹자고 했지!!!
명절 증후군이야 뭐야? 가사노동 A.I 로봇이야?
입에서 흉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명절에 딸내미 아들내외가 오는데 한 끼 밥상이라도 따뜻한 밥 뜨끈한 고깃국이라도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속마음을 훤히 알면서도 아니까! 알고 있으니까, 그걸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못났다. 카트를 밀고 있어서 내 손에 짐이 많아서라고 변명을 했지만 내 잘못인가 싶어서. 못났다.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넘어지는 노인을 재빠르게 붙잡지 못했던 내가, 잠시 방심한 내가 한심해서 더 화를 냈다. 못났다.
나 자신에게 주제 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그런데 그 화를 애꿎게 어머니에게 퍼부었다. 후회막급이지만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자괴감과 부끄러움과 자책과 미안함이 쓰나미처럼 몰아친다. 못났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아서 고개를 떨군다. 외면한다.
가족이란 서로에게 상대에게 어떻게 하면 더 상처를 줄 수 있을까 진심으로 궁리하는 것만 같다. 남이라면 꾹꾹 참고 못했을 말도 속으로 삭이고 수십 수백 번을 혼자서 되뇌었을 독한 말도 상대의 자존심을 뭉개고 상처를 헤집고 후벼 파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게 된다.
정말 못났다.
받아주지 않는 대학병원. 생사를 다투는 위급상황은 아니라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오늘. 올초에도 어머니가 미세골절로 입원한 전력이 있기에 혹시 모르니 응급실이라도 가서 X레이와 MRI CT든 뭐든 찍어보자 사정했다.
지금 안 아프다고 멀쩡한 게 아니야.
엄마는 나자빠졌다고! 뒤로 넘어졌다고!
보조기를 차고 있어서 안 다쳤다며 병원에 안 가겠다고 생고집을 부리는 어머니를 설득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동생내외까지 가세한 설득 협공에 어머니가 결국 고집을 꺾었다. 119를 불렀다. 어머니를 구급차에 태우고 다시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행.
연장에 손을 베이고 찔린 환자. 팔다리가 부러지고 다친 외상 환자들. 코로나 격리실에 있는 환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들어온 환자. 어머니처럼 넘어져 뇌진탕이 온 노인 환자 등등. 그래도 빈 침상이 더 많다. 휴일이라 모든 일상이 멈춘 탓인가. 추석연휴 첫날 응급실 풍경. 예상외로 한가하다. 어머니 척추에 엑스레이 CT를 찍었다. 다행히 수술 부위에는 이상이 없고 골절된 부분도 신경 손상도 없다. 천만다행이다. 이상소견이 없으니 진통제와 근이완제 수액을 맞은 후 퇴원해도 된다. 응급약국에서 약을 타고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응급실. 혼자서도 다 잘해요, 나 혼자 살 수 있어, 아무리 잘난 체 해도 다치고 아프고 병들고 늙으면 다 소용없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동물이다. 지구상에서 다치고 병든 약한 개체를 보살피는 유일한 동물이 고래와 인간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남들 다 쉬고 놀고 있을 시간.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떠나거나 기차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고 있을 이런 날. 24시간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쪽잠 자며 레드불과 박카스, 커피를 들이키며 밤새 환자를 진료하고 돌보는 사람들. 누군가의 돌봄 노동이 희생이 다른 이의 목숨과 건강을 지킨다. 소방서 119 구급대원, 응급실 의사, 간호사, 영상 촬영기사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머리를 조아린다. 고맙습니다.
추석연휴 시작 첫날.
이렇게 응급실에서 한나절을 보낸다.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