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깃든 곳에서 느끼는 생의 감각

슬기로운 간병 생활 12

by 홍재희 Hong Jaehee


소설가 장정일은 ‘인간의 사회적 지리적 토대는 자신이 맺고 있는 밀착도에 따라 경관(Landscape), 공간(Space), 장소(Place)로 구별된다’고 했다.


경관은 우리가 여행지에서 ‘경치 참 좋다’라고 말할 때의 그 곳으로 그 속에는 내가 속해있지 않다. 경관은 다만 내가 스쳐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내가 그것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그곳과 나는 아직 의미로 맺어져 있지는 않다. 반면 장소는 우리가 그 속에 거하고 있으면서도 나의 기억과 현 존재는 물론 미래까지 투사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횟수로 세 번째 어머니가 입원하여 간병한 이 병원과 병원 부근 전철역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려고 오르곤 했던 병원 뒷동산 서울 둘레길은 내게 이미 '장소'가 되었다.




병원 로비만 통과하면 정문 바로 옆에 숲길이 나 있었다. 병원이 산자락 아래 숲 안에 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 전철역에서 병원가는 길에 가로수가 즐비한 작은 공원을 걸어가는 것도 즐겁고 병원 바로 뒤에 푸른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되던지.


날마다 병실과 복도만 오다가다 온통 흰색과 스텐레스 광채와 형광등 불빛이 못견디게 지겨워질때면 나는 병원 앞 공원을 걷고 뒷동산에 올랐다. 어머니가 수술하기 전에는 훨씬 여유가 있어서 잠시라도 틈이 날 때마다 짬이 생길 때마다 공원을 산책했다. 수술 후에는 할 일이 많아져 병실에서 옴싹달싹 할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숲과 산에서 받은 기운으로 버틸 수 있었다. 눈만 감으면 숲이 보였다. 나는 숲 속 한 가운데 누워서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풀잎 내음이 나는 듯 했다. 몸은 매여있어도 마음은 숲 속에, 육신은 병실이어도 정신은 이미 숲 속 오솔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홀로 걷고 있었다.






숲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길섶에 핀 들꽃을 꺾어서 꽃다발을 만들었다. 병실에 가져가 컵에 담아 어머니 머리맡에 놓았다. 커피 마시고 씻어놓은 플라스틱 컵인데 나름 꽃병이다.


잠에서 깨신 어머니가 묻는다. 얘, 어디서 좋은 향기가 난다. 뒷산에 갔는데 꽃이 지천이라 좀 꺾어 왔어요. 그래? 꽃이 정말 이쁘다 이뻐! 어머니가 좋아라 하신다.


질병은 약을 먹고 수술로 치료되겠지만 마음까지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마음은 스맛폰과 TV 를 본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인간의 영혼은 자연의 품에서 치유되고 자연이 있어야 회복한다.


온통 죽음과 질병으로 도색된 병원에서 간병을 하다보면 시간 개념도 계절 감각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수려한 산세와 파란 하늘은 생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스트레스 받을 때 숲에 간다.

숲 속에서 침묵하는 순간 만큼은 그 어떤 것의 방해로부터 자유롭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시끄러운 내면이 가라앉는다. 우울한 감정과 나쁜 생각들이 씻겨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에서 간병 생활을 하는 석달 동안

병원 뒤 공원 숲과 산의 존재는

지친 내 영혼의 숨구멍이자 마음의 허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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