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의미 통증의 유의미

슬기로운 간병생활 13

by 홍재희 Hong Jaehee



아픈 엄마를 간병하다가 내가 앓아눕겠다 싶었다. 몸이 으슬으슬해서 생강계피차를 달여 마시고 전기장판 후끈 높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두통과 살짝 어지럼증. 이석증이 재발할까 걱정이 되어 그 길로 한의원 직행. 98 -45. 저혈압. 한동안 정상혈압이라더니 다시 도루묵. 한의사왈 기가 아주 없는 분이네요. 기가 너무 약해요. 젠장. 누가 나보고 기 세다 했어! 죽여버린다. 쿨럭. 나는 한의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여전히 추워요, 훌쩍! 혈이 안 도니까 그러죠. 산 송장이란 소리냐 뭐냐. 옆구리 허리에 담이 와서 결리네요. 침 좀 놔주세요. 침 맞고 원적외선 쬐고 부황 뜨니 좀 살 거 같다. 온몸이 노곤노곤 졸음이 솔솔 손발이 따뜻해진다.



문득 내 사주가 떠올랐다. 온몸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약골이라는데 심장만 겁나 세다는. 겁 없는 사주라 수술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는. 몸에 칼을 많이 댄다는. 그렇지만 명줄은 길다는. 그러니까 고쳐 말하면 연비 불량인 최악의 몸뚱이. 몸뚱이는 마티즈인데 정신력만 벤틀리. 조물주는 내게 담대한 용기와 거칠 것 없는 기력과 무서울 거 없는 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줘놓고는 왜 그에 어울리는 몸뚱이는 안 주신 걸까. 비극의 탄생.



내가 약골로 태어나서 병치레를 하도 많이 해서 요 모양 이 꼴이라고 딴지를 걸자 어머니는 기함하여 그게 다 네 년이 젊을 때 막살아서 술담배를 하도 처먹어서 그렇지!라고 면박을 줬다. 끄응...... 자업자득이란 소리다. 어머니는 당신이 내 나이에는 허리 디스크 수술하고도 복대 메고 애 셋 키우며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 다했다 팔순 노모보다 한참 젊은데 골골대는 내 꼬락서니를 보니 당신 나이가 되면 어쩔까 싶단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아아~ 상상만 해도 우울이 쓰나미처럼 몰려옵니다.



돌이켜보니 어머니 말도 일리가 있다.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데 스물 넘어서 집 아닌 곳에서 자기도 참 많이 잤다. 추위에 떨면서도 자고 파리 쫓고 모기에 뜯기면서도 잤다. 학교 강의실 과실 동아리방 잔디밭 책상 위 테이블 위 의자 붙여 새우잠 소파 쪽잠 여관 여인숙 모텔 아침 첫차 전철 좌석 여행길에서 찜질방 기차역 플랫폼 심야버스 공항 터미널 노숙. 그냥 집에 기어들어가기 싫었고 술 마시면 어느새인가 새벽을 훌쩍 넘겼고 그러면 더욱 집 놔두고 하릴없이 길거리를 방황했다. 부모집은 내 집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배낭여행길에는 순례자처럼 떠난 길이라 최대한 경비를 아껴야 했다. 노숙의 달인. 노숙이라면 이골이 난다.



술담배는 거짓말 보태 지구 한 바퀴는 돌지 않았을까. 술은 마신다기보다 밑 빠진 독에 들이붓고 담배는 손가락에 인이 박히도록 찌들 대로 찌들었었다.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을 때 담배가 미치도록 피고 싶어 길바닥 담배꽁초라도 보이는 족족 주워 피던 스물 언저리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지리 궁상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터. 젊다고 자신만만했던 그 시절에 타고난 몸뚱이를 학대하였으니 그때 이미 골병은 다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살 집도 있으니 굳이 한 데를 배회할 까닭이 없다. 술담배는 도저히 예전처럼 할 수도 없게 되었고 노숙하다간 이 세상이 아니라 저세상으로 뜰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았냐는 과거는 몸에도 나이테를 새긴다. 타고난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몸으로 무엇을 했는지도 중요하다. 마음이 물이라면 그 물을 담은 그릇은 몸이다.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마음도 몸이 망가지면 끝이다. 결국 몸이 죽으면 삶도 끝난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자명한 섭리를 망각한다. 살아있을 때 아프지 않을 때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 제 몸과 대화하는 사람은 없다. 건강할 때 우리는 우리가 몸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생각하는 나, 정신으로 마음으로만 사는 존재라고 여긴다. 아파야 병이 나야 통증에 시달려야만 사람은 자신이 피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그러나 몸이 더 이상 살기를 거부하는 순간에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깨우친다면........ 이미 늦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반드시 죽는다. 튼튼하다는 것은 지금 아프지 않다는 것일 뿐 앞으로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픈 데 없이 건강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쓰러져 세상을 뜨고 술 담배도 안 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던 이가 암에 걸리는 경우도 봤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듯이 살아온 사람이 의당 제 몸을 망친 대가를 치루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반면 예외 없는 법칙도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둘 다 옳다.

나처럼 몸에 고질이 많다는 건 일상을 괴롭히는 성가심이 많다는 소리다. 다르게 보면 고질은 살아온 이력을 반영하는 몸의 이야기이자 몸이 제 스스로 쓰는 일기다. 몸은 병으로 염증으로 통증으로 일기를 쓴다. 나는 몸이며 몸은 나다. 나는 아플 때 내가 몸이란 존재임을 가장 순수하게 온전히 느낀다. 아이러니하지만 통증이라는 고통은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게 하면서 동시에 살아있다는 감각을 가장 강력하게 느끼게 해 준다. 통증이 몸을 관통할 때 우리는 그저 주어져 살면서 의식하지 못했던 생명이란 것 그 무엇을 즉 살아있음을 가장 극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할 까닭이 없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간다. 무릇 고통을 자각한다는 것을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고통은 죽음이 내 곁에 있음을 망각하지 않고 각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죽음은 삶이 다할 때까지 나와 함께 걷는다. 삶이란 죽음을 향해 가는 일방통행로다. 고로 고통도 삶이요 죽음도 삶이다.


살아있으니 아픈 것이다. 죽었으면 더 이상 아플 이유가 없다. 아플 때마다 밤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을 떠올리고 불러내고 기억한다. 죽음은 뜻밖의 것이 아니라 삶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으로 죽음을 일깨우고 죽음을 기억하는 연습을 통해 살아있음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생명은 몸에 깃든다는 자명한 진리를 체험하고 동시에 죽음이 언제나 우리 안에 깃들어 있다는 진실을 깨우치기. 그리하여 살아있는 순간에 충실하기. 매 순간 살아 있는 자신을 느끼며 기뻐하기. 말 그대로 '안녕'하기.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나는 지금 이 순간 안전하고 태평하면 된다. 그러면 족하다. 그게 행복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오늘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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