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

슬기로운 병실 생활 1

by 홍재희 Hong Jaehee





1.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말은 너 같은 미련퉁이를 두고 하는 말이야."


어머니랑 통화하다 넌 어쩌면 아버지 빼박이라는 핀잔, 힐난, 잔소리 그리고 큰 한숨.


-좋은 건 다 내버려두고 왜 그 딴 걸 닮냐?

- 그럼 엄마는 아니란 말에요?


내 말에 발끈하는 어머니.


-난 아니야. 아프면 제깍 병원에 가서 미리미리 치료받고 했지. 네 아비는 지독해. 독한 사람이야. 웬만한 고통은 참고 아프다는 소리조차 안 했어.


-그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아버지니까 어린 나이에 총탄 맞고도 삼팔선을 넘어왔겠죠.


어머니가 병원에 가라 가라 귀에 딱지가 붙게 하소연해도 아버진 병원은 안 가고 집에서 무릎뼈가 보일 때까지 바셀린만 한 달 바르고 있었단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큭큭큭 웃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소주 마시고 술에 취해 덜렁거리는 이를 뽑던 사람이었으니 어련하겠나. 독한 인간. 생각해 보니 대학시절 나도 소주 마시고 취기에 유리에 베여 꿰맨 손목의 실밥을 이빨로 푼 전력이 있다. 도긴개긴. 부전여전. 그 아비에 그 딸이다.


2.


10월 말 지방 촬영 나갔다가 천변 갈대숲길에서 새끼뱀을 건드려 물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물린 사실을 숨기고 촬영을 계속했다. 그런데 물린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는 게 심상치 않았다. 급히 병원에 갔다. 굽어지지 않는 손가락을 보여주며 뱀에 물렸다했다.


-뱀 크기는?

-손가락 만해서 조그만데.


그런데 뱀 이빨 자국 두 개가 선명한 손가락을 요리조리 살핀 의사가 툭 한 마디.


-독사네! 독사에 물렸네.

-에엑?

-언제 물렸어요?

-한.. 두 시간 전에?

-흥, 벌써 다 퍼졌겠네. 물리자마자 압박하고 그 즉시 병원으로 달려왔어야지. 뱀독은 요기 피부 겉 혈관을 타고 순식간에 퍼지거든요.


내가 멍! 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시크한 의사왈


- 안 죽어요. 새끼뱀이라 천만다행인 줄 알아요ㅡ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해독제 주사 수액 어쩌고를 지시하더니 바람처럼 뿅~~ 사라졌다.


주사 맞고 수액 달고 누워있는데 뱀에 물린 나는 순식간에 온 병실에 진기한 화젯거리로 등극. 오마나! 가을뱀이 독이 가장 많은데 어쩌자고 뱀을 건드렸어. 에구구! 진짜 겁도 없네. 우린 무서워서 근처도 안 가. 병상에 누운 할머니 세 분이 이구동성. 안쓰럽다고 안 됐다고 사과즙도 주시고, 호박즙도 주시고 먹을거리를 건네주는 시골 양반들.


그러게요ㅡ 제가 왜 그랬을까요? 내 사주에 겁이 제로라더니. 뱀 무서운 줄 모르고 호기를 부리다 뒤통수. 쪼그만 새끼뱀이라고 만만하게 보다 그만 된통. 쯧쯧 까불다 쌤통이다.


졸지에 나는 뱀 건드린 얼간이가 되어 모든 이들을 즐겁게 해 드렸다.


3.


서울에 가자마자 꼭 병원에 들러 해독주사를 한 번 더 맞으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한 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냥 다시 일모드. 신발이 불편했던지 발목에 생긴 작은 물집이 터질 때까지 나 몰라라 방치했다가 사달이 났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목욕탕도 가고( 미쳤지!) 일하러 뛰어다니고 했더니 도통 부기가 가라앉지 않고 저림에 열감 통증이 심해졌다. 운동화에 부운 발이 들어가질 않았다. 발이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 6시간 강의를 끝까지 듣고 나니 걷기도 힘들어졌다. 겨우겨우 인근 동네 의원 야간진료 갔다가 2차 감염이 시작되었다는 경고 확진. 의사는 위급하다며 다시 큰 병원으로 가라 했다. 부랴부랴 응급실 직행.


봉와직염(연조직염) 확진.


염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큰일 난다 괴사로 다리 자르고 싶냐 행여 균이 몸 전체에 퍼지고 열이 내리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며 의사가 협박에 가까운 강권으로 입원 명령. 반강제로 입원. 염증 수치가 떨어져 정상이 될 때까지 절대 뛰지도 걷지도 서 있지도 말고 24시간 발 올리고 얼음 찜질하고 항생제 하루 세 번 꼼짝 말고 침상에 누워 있으란다. 네에엑?!!!!! 뭐라고요? 아놔! 이런 젠장! 할 일이 태산인데.


선후관계를 인과로 착각하는 것은 인과적 오류 비논리의 극치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독사에 물린 후 2주일 만에 이 사단이 나니 독사에 물린 게 영향을 미쳤을까 아닐까 괜히 독사 핑계를 대고 싶은 간사한 마음.


하지만 뱀이 무슨 죄니? 잠자는 애 건드린 내가 문제였던 거고 그것과 무관하게 그러니까 결국 쉬지 않고 일하다 면역력이 바닥에 떨어진 채로 초기에 치료를 안 한 탓 아닌가. 결론적으로 별 거 아닌 물집 하나에 제대로 덜미를 잡힌 셈.


바꿔 생각하니 그 옛날이었으면 난 세균 감염에 패혈증으로 벌써 죽었을 거야. 약에 중독된 몽뚱이라 그런지 동네 의원 약국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항생제 모르핀 정도 돼야 말을 들어.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의학의 도움으로 명을 부지하고 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선생. 고맙습니다. 몇 번을 죽었을 목숨을 여러 번 살려주시네요.


병실에 기독교인들이 찾아왔다. 병이 빨리 나으려면 예수 믿으란다. 눼눼! 저는 플레밍 선생을 믿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지금 제게는 페니실린입니다. 아멘!


4.


병실 다른 환자들 간호사들 방문객들마다 사고냐 골절이냐 다쳤나 수술했냐 자꾸 묻는다. 아아, 이걸 뭐라 말하지. 설명하기 대략 난감하다. 그러니까 이게 살짝 물집이 생겼거든요. 물집 때문에 깁스? 갸우뚱하는 표정이다. 다시 말꼬리가 길어진다. 그런데 그게 감염이 돼서ㅡ 감염이라고? 뭣 때문에? 그니깐요아, 그게. 시작은 뱀에 물렸는데요.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웃음이 나온다. 아니 발이 그렇게 퉁퉁 부었는데 어떻게 걸어다녔대. 그런데도 몰랐어요? 열나는데 안 아팠어요? 그러니까 그게... 슬슬 인내력의 한계가. 아아, 급 피곤이 귀차니즘이 몰려온다.


5.


의사왈 흠흠...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네요. 상처 부위가 아물면 고름이 찬 부위를 긁어낼지 말 지 결정합시다.


사람인 나는 수억 세포들로 구성된 고도의 유기체 집합체다. 열은 백혈구가 세균과 싸우고 있다는 신호고 붓기는 그 전투에 신경과 혈관이 새우등 터지듯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고름은 균과 싸우다 죽은 백혈구들의 사체 잔해다.


체력 저하 에너지 고갈된 내 몸속 허약한 백혈구들은 헐떡대며 끝까지 버티다 장렬히 전사하고 그 틈을 타서 세균들이 아싸 신나게 뷔페 잔치를 벌이는 중이었단 소리. 백혈구의 사체를 넘고 넘어 드디어 항생제 지원군이 도착했다.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반격을 시작한다. 항생제의 힘을 빌어 오늘도 면역세포들은 다시 살기 위한 피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 미안하다. 세포들아. 몸뚱이 주인을 잘못 만나서 너희들이 생고생을 하는구나.


또다시 휠체어 신세. 몇 년 전에 이미 장기 입원해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휠체어 밀고 다니는 게 너무 쉽다. 실실 웃음이 나온다. 아아, 아무래도 난 병원 체질인가. 아버지를 빼닮았지만 병원을 집처럼 편하게 여기는 건 나만의 기억 버릇인 듯. 아버지가 병상을 나만큼 좋아했을 리는 없다. 내 몸의 곳곳 뇌세포 하나하나에는 생후 수술을 받고 병상 신세를 졌던 아기 때 기억이 그 원체험이 뿌리 깊게 각인되어 있는가 보다.


병원밥이 왜 이리 맛있나. 간호사들이 의사가 왜 이리 친근할까. 병상이 병실이 왜 이리 편안할까. 난 병원운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듯. 갑자기 응급으로 들어간 병원인데 의사는 인상 좋고 정확하고 간호사들은 농담 잘하고 다정하고 다인실 환자들은 선하고 착하다.


강제 휴식 모드. 의사는 최소 2주라며 뻥을 날린다. 며칠이나 이렇게 누워있어야 하나. 멘털 모드를 바꿀 시간. 차라리 잘 됐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이 참에 쉬어나 가자.


나이 듦 증상.

자꾸 입원할 일이 생긴다.

작고 사소하다고 우습게 보면 큰 코 닥친다.

쉬지 않고 일만 하면 병난다.

나이 듦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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