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녀들

슬기로운 병실 생활 2

by 홍재희 Hong Jaehee




1.


입원한 지 일주일. 일요일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설핏 잠결에 병실 환자들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자는 척하고 귀를 기울였다.


TV에 관심 없는 나에 비해 세 사람은 드라마팬. 세 분 다 종일 드라마만 봐댄다. 50 60 70대 여자 셋이 연속극을 보며 욕하고 맞장구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내게는 진기하고 신기한 풍경이다. 처음엔 날더러 리모컨을 건네며 보고 싶은 걸 보라 했다. 전 TV 안 봐요. 인터넷 켜고 유튜브와 넷플릭스 보면 됩니다. 이분들이 좋아하는 연속극엔 아예 관심이 없으니 채널 가지고 싸울 일이 없다. 게다가 연속극이라니.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근지근.


40대에 병으로 남편과 사별한 미용실 원장님.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남편이 있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아들만 둘인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다가 넘어졌는데 골다공증이 중증이라 뼈에 금이 갔다. 결혼해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출근해서 일할 아들들에게 연락하기 미안해서 이를 악물고 버스 타고 병원에 왔다 했다. (아니 119에 전화를 할 일이지!) 아플 땐 자식도 소용없다고. 그러므로 미용실 원장의 결론은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사는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60대 춤선생이 춤바람이 난 이유는 남편이 하도 바람을 피워 화병에 시작한 것. 6남매 맏이로 태어난 춤선생. 집이 오지게 가난한 탓에 중학교만 나오고 배우지 못했다. 그 한으로 많이 배운 가방끈 긴 남자랑 결혼했다.


-배운 놈은 다 그런 건지 모르지만 애 낳은 날 두고 너무 당당히 바람을 피우고 다녔어. 근데 어떡해. 난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는데. 우리 친정이 너무 가진 거 없고 내가 못 배워서 날 똥 보듯 하나? 저는 할 것 다하는 주제에 나는 집 밖에도 못 나가게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감시했다고.


남편이 허구한 날 바람을 피워서 잡으러 다니고 바람난 남편과 내연녀가 집으로 찾아오고 되풀이한 세월. 미움과 증오의 골이 너무 깊어 더 이상 부부간에 정이 없다. 같이 잠자리를 하지 않은지 20여 년이 넘었다고 자조한다. 자식들 때문에 부부라는 거죽만 달고 사는 것일 뿐 병원에 남편이 졸졸 찾아오는 것도 거추장스럽고 싫다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세 번 주민센터 춤교실에 나가고 남편 자식 몰래 친구들과 카바레에 춤추러 다니며 그 긴 세월 응어리를 풀고 있노라고.


- 전 구로공단 봉제공장에 다녔어요. 다섯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대시했어. 다른 애들은 끼리끼리 임신하고 결혼하고 그랬는데. 난 사귀기 싫더라고. 나보다 좀 나은 남자랑 배운 남자랑 만나야겠다. 해병대 간다는 남자니 좀 낫겠지 한 거지.


그때 뜨개질을 하며 잠자코 듣고 있던 50대 전직 버스기사님. 빨강머리 앤처럼 갈래머리를 딴 기사님 촌철살인 한 방.


-귀신 잡는 해병이 아니라 여자 잡는 해병이네!


한바탕 깔깔깔.


하지만 허깨비라도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미용실 원장님 굽히지 않고 한마디.


-남자 바람 안 핀 사람 어딨어? 남자도 늙으면 철들어. 정신 차리고 잘해줘.


가만히 듣고 있던 난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남편이 철들 때 기다리다 늙고 병드느니 이미 철든 남자를 잘 고르면 될 일 아닌가. 철든 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고? 그러니까 다짜고짜 결혼할 게 아니라 많이 만나고 자보고 사귀어 봐야 된다고요. 나는 사랑에 취해 결혼과 결혼하는 여자들, 결혼에 목매고 결혼에 제 인생을 도박 거는 여자들이 제일 무섭다.



70대 미용실 원장은 그래도 끝까지 남편이 있어야 된다고 우긴다. 이 분의 기억 속에 남편이란 존재는 젊은 날 한 철 잠깐 살고 속절없이 세상을 뜬 사무치게 그리운 존재다. 사십부터 남편 없이 홀로 아들 둘을 키웠다. 칠순에도 혼자 살다 보니 바람피우는 남편이라도 있는 게 좋지 않겠나는 거다.



60대 춤선생은 원장의 말을 반박한다. 평생 바람만 피우고 고통을 준 남편은 없어도 된다고. 이혼하란 말도 많았지만 그 시절에 이혼녀가 되는 것도 아비 없는 자식으로 결혼식장에 들여보내기 싫어 나 하나 참고 살면 다들 행복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뿐이라고.



50대 버스기사님은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한다.

흰색이라도 자기가 검은색이라면 검은색이어야 하는 가부장 독재자 아버지가 결정한 결혼이었다. 어머니는 네가 싫으면 도망치라고 했단다. 그런데 어디로 도망칠 수 있었겠는가. 배운 것도 돈도 없이 고작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여자였던 내가? 남편이 일찍 죽고 과부가 되자 아비는 눈을 감을 때까지 딸에게 미안하다 빌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사는 게 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딸들이 나처럼 그렇게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고.


2.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어머니와 이모들 사촌들 언니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름은 달라도 모두 똑같은 인생이었다. 아버지를 남편을 아들을 받들어 모시고 자식에 목메고 산 이 여성들. 가부장제 가치관의 노예인 이들을.


이들의 머릿속에 인생은 오직 하나. 결혼과 가족이라는 것을 떼어놓고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


70대 원장은 아들 둘이 며느리가 시키는 대로 집안일을 하는 게 못마땅하고 서운하다. 내가 어떻게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애지중지 키운 아들인데 부엌에 들어오게도 못한 그 아들 손에 물을 묻히고 쓰레기를 비우게 하고..... 이런다.


60대 춤꾼은 근처 사는 사위 둘이 주말마다 집에 들른다. 그때마다 맛난 음식을 해먹 인다. 딸들이 안 해주니 장모가 사위에게 미안해서 허리가 아프고 피곤해도 하는 게 제 몫이라 여기고 싫은 티도 안 낸다.


나는 몹시 궁금해진다.


자신을 위해 가사일을 해주지 않는 남자( 아들, 남편, 아버지, 사위)를 탓할 일이지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여자(며느리)를 탓하는 이유가 뭘까. 이 여자들은 제 아들이 평생을 희생한 어머니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를 위해 집안일을 하는 게 더 얄밉닼 것이다. 자신의 노동과 희생과 헌신의 대가가 없다는 사실이 억울한 것이다. 그녀들의 머릿속엔 아들을 가르쳐 성인이 되면 스스로 빕을 해먹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끔 살림을 할 줄 알게 해야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자신의 이름 대신 오직 누구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반펻생을 엄마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올린 이 여성들은 아들은 제가 바친 희생과 헌신한 세월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곧 자신과 동일시하므로 탓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가부장제에 세뇌된 여성들은 아들인 남자를 여자인 자신보다 우월하게 보기 때문에 남자가 아닌 같은 여자인 며느리를 통해 보상받고 대접받으려 한다. 한마디로 며느리란 역할의 여성을 남성보다 아래로 얕잡아 보는 것이다. 뼛속들이 봉건적인 남존여비 의식이다. 여성도 여성혐오를 한다. 가부장제는 남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여성은 피해자이자 공범이다.


이 여성들은 아들은 모실 귀한 분이고 딸은 자신처럼 노동할 일꾼으로 보는 자신의 마음에 남존여비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남존여비 사상에 찌든 남성우월주의의 노예인 이 여성들은 아들을 남편을 여성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못하는 자신이 문제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여성인 자신을 남자보다 아래인 존재로 남자(아버지/ 남편/ 아들)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 여자(어머니/아내 /딸)로 규정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낮추어 참고 견디고 산 인생이기에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잘잘못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밝혀 문제를 시정하기보다 같은 약자인 다른 여성을 낮추고 흉보고 욕하고 미워하며 폄하하는 것으로 자신의 울분을 해소한다.


결혼해서 남편의 소유물로 전락하여, 밥 하는 여자, 애 보는 여자, 바람 펴도 참고 사는 여자, 매 맞는 여자, 남편 대신 일하는 여자, 돈 버는 여자로 살아도 집안의 가장은 자신이 아니라 남편이라 철석같이 세뇌받고 살아온 이 여성들. 가부장제 결혼 외에는 어떤 상상력도 없는 이들.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이들.


슬프다.


여성으로서 남성을 우월하게 보며 여성을 하찮게 보는 여성 혐오를 내면화한 슬픈 현실. 그러나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여자의 적은 남자도 아들도 남편도 아버지도 아니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가부장제 결혼제도, 성별로 우열을 가르고 젠더를 대립시켜 갈라치기 하며 남녀 모두에게 성차별을 내면화시키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다.


3.


아들 있어봤자 며느리도 안 챙겨주니 남편 있어야 한다는 70대 푸념에 60대 춤꾼이 날더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들 대신 어디서 예쁜 딸을 낳으란다. 그래야 늙어 아플 때 챙겨주지 않겠냐고.


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딸이 필요한 이유가 적적할 때 곁에 두고 일꾼으로 쓰기 위함이던가. 나름 생각한다고 한 말이겠지만 직관과 통찰 없는 개인의 사적 경험, 사유와 성찰 없는 체험의 축적은 그저 시대착오적인 개똥철학에 불과하다. 이들의 사고는 자신의 체험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삶 한 개인의 경험을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삶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그러나 자신의 외부에서 타자가 되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훈련, 즉 자기 객관화가 없이는 본질을 직시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를 생각할 수 없다. 자아성찰은 끊임없는 회의 그리고 직관과 통찰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좀 더 구체적이 된다. 좀 더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혼자됨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독력을 기르고 스스로 일상을 꾸려나갈 생활력을 유지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보험을 들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운동하고 건강 관리에 철저해야 하고 홀로 죽을 때를 대비해서 상조금을 마련하고 우리 사회가 존엄사를 인정할 수 있게 안락사(조력자살)를 허용하도록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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