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여자들

슬기로운 병실 생활 3

by 홍재희 Hong Jaehee



"여자 육십은 새색시지."

"주사를 하도 맞아서 엉덩이가 뚱뚱 부었어. 주사기가 안 들어가."


푸하하 하하하! 환자 한 분의 농담에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우리 병실 여자 환자들은 50대 60대 70대 셋이다. 이 분들 입담을 듣고 있노라면 빵빵 터진다. 삶에서 우러난 애환에 웃다가 눈물 찍. 배꼽을 잡는다.


오늘 아침 대화 주제는 춤, 춤, 춤.


허리 디스크 시술을 받은 61살은 카바레에 친구들과 사교댄스 추러 다니시는데. 이 분의 지극한 춤사랑은 남편과 자식들도 모르는 비밀 취미. 저녁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춤추러 갈 예정이었는데 짜릿한 금요일 밤을 보내야 했는데 아뿔싸! 하필이면 불금에 입원했다며 못내 억울해한다.


디스크 협착증 만성 골다공증으로 뼈에 금이 간 71살 미용실 원장님. 미용으로 아들 둘을 혼자 키워낸 원장님도 덩달아 왕년에 성당에서 스포츠 댄스를 배웠던 경험을 신나게 풀어놓는다.


십자인대 인공관절 무릎 수술을 한 56살은 전직 버스 운전기사. 운전대로 자식 둘을 다 키웠단다. 통증이 엄청날 텐데 신음소리 한 번 안 내고 무통주사로 버틴다. 호들갑 떨어서 병실 분위기 흐리기 싫으시단다. 그 말에 다들 엄지 척! 옛날에 태어났음 독립운동가라고 감탄했다. 이 분은 뜨개질에 열일. 처음 입원했을 때 하도 지루해서 배우기 시작한 뜨개질이 이제 가방도 만드는 수준으로 등극.


세 분 다 입을 모아 날더러 퇴원하면 아플 때 챙겨줄 남자를 구해 결혼하란다. 이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뻔한 레퍼토리 시작. 후훗~ 예전 같으면 짜증 나서 발끈했겠지만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그저 빙그레 웃음만. 시치미 뚝 떼고 자못 진지한 척 폼 잡고 고백했다.


-사실 제가 남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들 흡...! 하고 조용해진다. 그러면 나는 짐짓 모른 체하고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입을 뗀다.


- 귀찮아요. 날 챙겨주기는커녕 내가 챙겨야 하는 게 남자예요. 게다가 한국 남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아주 많이 가는 동물이라서요. 개 고양이는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죠.


아주머니 셋이 까르르까르르 박장대소.

그러면 난 한 술 더 뜬다.


- 게다가 제가 나가서 일하고 돌아다닐 동안 집에서 조신하게 기다려주는 놈이 없어요.


다들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며 깔깔 댄다.

나는 속으로 킥킥 웃는다.


60대 춤꾼이 남산 팔각정에 라디오 들고 가서 춤추고 놀던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자 나머지 두 환자 나도 그랬어! 한 마디씩 거든다. 세 분 다 첫사랑 첫 경험 첫 남자와 결혼. 뜨개질 장인인 50대만 보수적인 아버지 탓에 연애란 것도 못해보고 선 봐서 결혼.


디스크 환자 춤꾼은 TV 드라마 속 젊은 남녀의 꽁냥꽁냥 연애질을 보더니 부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 요즘 길에서 전철에서 젊은 애들이 서로 껴안고 뽀뽀하고 그러더라. 우리 땐 손잡고 가다가 아는 사람 볼까 봐 만나면 손 빼고 그랬는데. 나도 다시 태어남 저런 연애해보고 싶어.


그 말을 듣더니 뜨개질에 열일하던 전직 버스기사님 입을 삐죽이며 한마디 거든다.


-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거 아니까 하는 소리지.


뒤통수를 휘갈기는 일갈에 모두 또다시 깔깔깔.


셋 다 입을 모아 한소리.


-아휴! 그 시절엔 남자랑 손 한 번 잡으면 한 번 잠자리라도 하면 다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어.

- 뭔 소리예요? 한 번 잤다고 평생을 살아요? 섹스는 섹스고 결혼은 결혼이죠.


내 말에 다들 오마나! 까르르까르르!


이런! 애도할 일이다. 내 어머니를 비롯하여 여자들이 다 이리 살았으니.

저주받을 가부장제 가스라이팅이여.



군대 간 남자 친구 삼 년 간 기다린 디스크 환자 춤꾼은 그 시절 남산서 놀다가 정말 잘생긴 남자와 눈이 맞았더란다. 자기도 상대도 둘 다 좋아했는데 군대 있는 애인 때문에 도의적 양심에 포기했다고.


- 아니 썸 타는 게 무슨 죄에요?

- 그럼 어떻게? 군대에서 총 들고 튀어나올까 봐 무서워서 그냥 결혼했어.

-그런 짓을 하는 남자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거예요.

- 나도 싫었지만 남자가 하도 죽어라 쫓아다녀서 어쩔 수 없어 결혼했지.

- 그거 스토킹이에요.


세 사람 이구동성으로


"그러게 말이야. 우리 땐 그렇게 해야 하는 줄만 알았지. 요즘이야 다르지만 그땐 그랬어!!! "

"하지만 요즘 세상은 달라. 우린 몰라도 너무 몰랐어. 순진했지. 요즘 젊은애들은 정말 똑똑해."


그때 새우등 눈웃음을 치는 간호사가 대화에 슬쩍 끼어든다.


"맞아. 요즘엔 싱글은 있어도 처녀는 없어. “


모두 빵! 터졌다.


평생 고데기 말며 시장통에서 장사하고, 버스 운전대를 잡고 달리며, 애 키우고 살림하는 이중노동에 절단난 허리와 요절난 무릎을 달고서 새벽녘 통증에 신음하면서도 아침에 옆 병상 환자의 아침을 챙기고 상태를 염려하며 서로 먹을거리를 나누고 군것질을 같이 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여자들. 노동하는 여자들의 훈훈한 온정.


여리여리 고운 목소리 미용실 원장님.

불금에는 당겨줘야 하는 춤바람 선생님.

환자들을 웃게 하는 뜨개질 기사님.


가슴이 따스한 여성들.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들.


이 분들 한 명 한 명이 캐릭터.


병실 시트콤 하나 만들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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