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평등 Gender Equility _ 고정된 성역할을 넘어서
여자.
상대 남자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결혼을 선택하는, 결혼하면 자기 인생이 무언가 완결된다고 생각해서 결혼하는 여자들이 있다. 이런 생활은 시시해하는 생각, 어쩌면 난 아무런 재능도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욕구불만과 같은 부정적이고 우울한 감정이 결혼이라는 대변화로 일시에 사라질 거라고 믿는 여자들. 이들은 실체 없는 우울과 불만족 그리고 무기력과 불안을 파도처럼 달고 살면서 어딘가에서 짠! 하고 날아올 운명적인 사랑 로맨스를 기다린다. 자신의 지루하고 의미 없는 삶을 한 순간에 바꿔줄 그 무엇, 대상, 바로 그 남자를 꿈꾼다.
이런 여자들은 현재 자신의 삶이 몹시 불만족스럽다는 사실을 마음 한구석으로 깨닫고는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란 괴롭다. 오랜 노력이 필요할 지도 모르고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과 정면승부할 용기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적어도 생활은 변하지 않을까. 일상을 바꾸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 남자가 그리 탐탁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으니까 뭐 그리 싫지도 않으니까. 지금 나한테는 딱 결혼하기 좋은 상대인지도 몰라 등등. 이런 식으로 그녀들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앞에 있는 남자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꿈꾸던 결혼과 결혼한다. 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기를 두려워하는 의존적인 소녀는, 남들에게 욕먹기를 무서워하는 착한 소녀는 이제 아버지 대신 제가 선택한 남자의 인생에 제 운명을 맡긴다.
그러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사람은 머지않아 비참함을 맛본다. 불안과 낮은 자존감, 우울감을 안고 사는 건 자신에게도 남자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진정 좋아할 수도 없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남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도 못한다. 그저 매사에 불안하여 끊임없이 상대의 사랑을 갈구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려 든다.
남자.
여자가 조용히 제 뒤나 따르고 챙겨주는 거만 하길 바라는 남자, 착하고 말 잘 듣는 아내를 원해서 결혼하는 남자들이 있다. 대개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 대기업, 회사원, 공무원 등등에 올인하고는 사회 진출 후 줄곧 힘, 백, 파벌에 줄서기하면서 오로지 안정을 추구한 종자들이다. 그런데 회사 또는 직장을 벗어나면 이런 인생은, 이런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상시적 고용불안이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이들도 이제는 제 미래를 낙관할 수도 알 수도 없다. 대중매체든 매스컴이든 어디서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면 좋을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자는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니까' '남자라서' '남자다워야 한다'라는 남자라는 자존심에 집착한다. 그러나 남자다움에 목을 매는 남성일수록 역설적으로 잦은 불안과 낮은 자존감에 시달린다. 이들의 허약한 정체성은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사리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이런 남자들은 스스로 불안감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 대신 손쉽게 타인에 기대서 안정감과 권위를 보상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귀는 여자나 제 아내에게 착함과 공손함을 요구한다. 바깥 세계에서는 스스로 자신감도 없고 안정감도 없기 때문에 자기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애인이나 아내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한다.
이들은 제 여자만큼은 언제나 자기편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유형의 남자는 여자가 조금이라도 남자의 의견을 반박, 비판하거나, 거절, 거부의 의사를 밝히면,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화를 내기 십상이다. 이들은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던 여자가 고분고분 온순하지 않으면 큰 충격을 받는다. 여자가 자기를 추켜세우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쉽사리 상처를 입는다. 남자라는 과도한 자존심 바로 그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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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여자와 이런 남자가 만나 결혼을 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여자 탓, 남자 탓, 네 탓, 남 탓, 세상 탓을 한다. 여자가(여자 친구가, 아내가, 엄마가) 여자(아내, 엄마, 며느리) 답지 않아서,
남자가(남자 친구가, 남편이, 아빠가) 남자(남편, 오빠, 아빠)답지 않아서라고 비난한다.
그렇지만 여보세요.
한 번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세요.
남자, 여자이기전에 나, 너, 우리, 그리고 서로가.
나답게 있는 그대로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산다면
그렇게 사는 세상이 온다면?
법률 제도상에서 남녀 불평등은 없애는 일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래야 하는 이유는 여자가 '남자보다 약해서!' 남자는 '여자보다 강해야 하니까!'라는 이유 따위 때문이 아니다. 보호받아야 할 약한 여자라는 의미는 여자는 뭔가 이상하고 정상이 아닌 존재라는 의미다. 이는 남자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으로, 이런 생각으로 사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바뀌지 않는 한, 결국 여성해방과 남성해방은 그만큼 늦어진다.
성별 /젠더로 서로를 억압하는 것은 남녀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여자다움' '남자다움'보다 '사람다움'이 먼저다.
성평등은 '여자다움' vs '남자다움'이라는 고정된 역할로서가 아니라 나다움. 사람다움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해주는 길이다.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강요된 의무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고, 나다움과 사람다움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자신답게 더 자연스럽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쓸데없는 자존심에 집착하게 하는 게 아니라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성을 존중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일구는 것이다.
그것이
가부장제를 넘어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계를
성평등이라는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