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quid Love

사랑해서 결혼한다의 역설

by 홍재희 Hong Jaehee

연말연시에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타로로 유독 연애나 결혼운을 물어보는 싱글들이 많아진다. 사랑과 결혼은 하등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어떤 이유로든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욕망이 무척 흥미롭다. 생물학적 본능이거나 현실적 이해타산 아니면 고독과 불안의 대체물 또는 관습이 된 타성이든 행복 판타지든 그 열렬하고 간절하며 집요한 욕망 앞에서 나 같은 사람은 결국 형이상학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결혼(제도) 그 자체를 사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원만치 않은 부부생활을 지속한 부모 아래에서 자란 탓일까. 나는 애당초 결혼에 대한 기대나 환상 자체가 없다. 부부 사이가 나쁜 가정에서 자란 나 같은 사람은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우리 집만 해도 언니는 결혼을 했고 동생은 결혼하고 싶어 한다. 결국 같은 환경에 놓여있었다 해도 어떻게 기억하느냐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내 경우에는 나이 드니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는 집에서 자란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나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열렬히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부부의 자식으로 결혼 생활이라는 삶의 밑바닥을 그 이면까지 볼 수 있었다는 건 일생에 다시없을 행운이었다. 새삼 고맙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천성적으로 악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실 사람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그가 악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더 많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남자가 술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고 책임감 강하고 성실하며 아내와 자식에게 예를 갖추었던 당신 아버지와 같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결혼하면 당신도 당신의 부모처럼 살 줄 알았다고 했다. 운 좋게 나름 실패하지 않은 가부장을 아버지로 둔 바람에 세상 남자가 모두 제 아버지같을 거라 착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유복한 어린 시절이 가져다준 일종의 폐해다.


어떤 사람을 결혼상대자로 여기는 순간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패착 또는 실수가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그 순간만큼은 무시하려 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장점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을 거라 믿는 순진함과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주고 자기를 영원히 사랑해 줄 거라는 이기심이 작용한다. 하지만 기대는 언제나 배반당한다. 왜냐고? 너무 자명하다. 그(그녀)는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했어도 부모와 자식이 다르듯이 부부도 서로 다르다. 이들이 살아갈 운명도 제각각 다르다. 성격 가치관 취향 뭐 하나 자신과 자로 잰 듯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부모 자식이나 부부 또한 상대가 자신과 똑같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불행이 싹튼다.


물론 서로 기대하는 만큼 사랑하고 서로의 성격과 취향에 맞춰 주의를 기울이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이상적(!)이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상대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기대'만' 한다. 이 역시 나처럼 회의적인 인간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결혼을 구속 또는 소유로 생각하는 나는 "필요" 또는 "기대"로 선택한 결혼이 행복일까에 대해서 여전히 의구심을 거둘 수가 없다. ‘필요’ 또는 ’기대’ ‘조건’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기 힘들다. 생각해 보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면 자신이 원했던 모습이었던 상대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될까. 범인들은 못한다. 그거 하면 부처다. 보살이다. 사람은 그저 상대가 언제나 변하지 않은 채 매 순간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착각이다. 망상이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부모 자식이나 부부도 결국은 나와 다른 타자다.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이 타자를 받아 들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을 깨는 것이 더 맘 편하게 사는 길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무엇과 조화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누군가와 살고자 한다면 차라리 기대 없이 출발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럴 때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 망상이 아니라 진실이 된다. 때로는 체념과 포기가 삶을 전진시킨다. 그 대가 또는 보상은? 자신이 더 잘 살게 된다. 습관과 두려움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와 맞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말고 과감하게 구태의연하고 억지스러운 관계에서 탈출하는 것이 자신도 행복하고 세상도 제자리를 찾는 길이다.


흔히 결혼을 도박이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결혼 과정은 어느 정도 자기 의사에 따라서 통제할 수 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철저히 사랑이라는 낭만성 또는 연애감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만 결코 아니다. 이성적인 바탕에서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때때로 그토록 자신의 일생에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어느 누가 무모하게 시도하려 할까? 알고도 짐짓 모른 체 눈을 감고 스스로 속고 속이는 것이다. 연애 후 결혼, 혼기가 되었으니 결혼이라는 공식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과정을 밞은 결혼일수록 더욱 그렇다.


생각해 보면 진짜 도박은 자식이다. 아이라는 존재야말로 일생일대의 커다란 도박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무력감은 증가하기 시작하고 아이가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된다. 부모 된 자들의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자식이 존재하는 한 위험과 변수를 피해 갈 수 없다. 예를 들어 자식의 건강은 기껏해야 우연히 얻어지는 행운일 뿐인데도 우리는 흔히 그걸 양육과 보호의 결실로 간주한다.


자식이 병에 걸리면 심각한 경우 모든 이의 행복을 파괴한다. 자식이 병에서 회복된다 하더라도 그 후 우리는 자식이 죽으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절감하면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일생에서 어쩌면 아기이자 어린애였던 시절에 아주 잠시동안 부모 곁에 머물 정도로 인색하기만 한 아이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열정을 쏟는 일의 아이러니란!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로맨스는 연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식이다. 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을 나누고 또 헤어지고 선택할 수 있는 연인과 달리 우리는 자신의 아들이나 딸을 제 취향대로 선택할 수없다. 그래서 어쩌면 아이들은 업보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다시 결혼으로 돌아와서,


결혼했다고 행복이 거저 달려오는 것도 아니고 결혼하지 않았다고 불행이 짝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도 남이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그저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것이다. 행복이란 조건이 아니라 상태다. 그 상태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라 순간이며 지극히 찰나적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것을 스스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 사랑이 애욕과 육욕 또는 열정인 것인지 보호과 책임 또는 안정이라는 것인지 과연 무엇인지를 깊은 곳까지 사랑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주변과 상황과 상대의 마음에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말고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각자가 바라는 내면의 풍경이 존재하고, 우리는 마음의 지형을 이루는 풍경의 가장자리 윤곽을 더듬으며 일생을 보낸다. 어떤 사람들은 운 좋게도 제 안에서 삶의 윤곽을 쉽고 편안하게 발견한다. 어떤 이는 제가 태어난 고향에서, 어떤 이는 낯선 땅 외국에서, 바닷가 또는 사막에서 비로소 에너지를 되찾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도시에서 누구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외진 산골에서 진실로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반면에 누구는 자연이나 예술 또는 학문을 통해 직업이나 일로 또 다른 이는 자식이나 부모 형제자매, 애인 또는 배우자에게서 아니면 타인의 모습에서 즉 관계에서 자신의 분신을 찾으면서 만족을 얻으려 한다.


이렇듯 사람마다 만족의 수위와 범위는 전부 다르다. 따라서 부모 자식 간이라도 부부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가 만족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너는 무엇에서 평화를 만족을 얻는가 하고. 그리고 그와 나는 진정 서로가 만족하는 지점이 같은가 하고.


- 어떤 형태로 열렬한 연애를 했든 최선이든 차선으로 선택한 결혼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후회란 것은 남는다. 후회 없는 사랑도 인생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후회하지 않을 자유와 선택할 자유가 있을 뿐이다. 그 밖에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지로는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손바닥 안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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