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이 아닌 한국남성들을 사랑하고 존중할 것
어렸을 적부터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의사표현이 확실한 것을 두고 이기적, 주관이 뚜렷해서 이기적, 예스 노 분명해서 이기적,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겠다고 대답해서 이기적, 아버지와 남동생을 챙기지 않는다고 이기적, 집에서 싸우고 학교에서 개기면서 설령 맞는다 해도 내 의지를 꺽지 않아서 이기적, 결코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는 말을 내뱉지 않아서 이기적,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지 않아서 이기적, 착한 딸이 아니라서 얌전한 여학생이 아니라서 이기적이란 소리를 듣고 살았다. 무시했다. 하지만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만큼 자주 들으면 상처받고 긁히고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때는 내가 정말 이기적인가? 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외국인 애인 집에 있을 때다. 나도 모르게 방바닥 머리카락을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그러자 애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을 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뭐 하는 거야? 그걸 네가 왜 치우고 있어? 내가 너무 더럽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긴 내 집이고 청소는 내가 해. 넌 손님이고 내 애인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넌 이 집 청소부가 아니야.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그때까지 살면서 누구한테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그 순간 나 역시 K -유교걸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랬다.
엄마는 청소하지 않는 내게 언니에게 딸들에게 잔소리를 했어도 아들에게 아빠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인데 어느 한쪽에게만 강요되는 일이 못내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느꼈으면서도 집안일에서 우아하게 빠져나와 남일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회피하는 집 안의 남자들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품고 자랐음에도 그런 내가 남 집 남자집에 가서 나도 모르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널 좋아하니까라는 표시로 뭣도 아닌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고 동시에 너무 충격을 먹은 그날. 애인의 그 한마디가 나를 일깨워줬다. 일상이라는 살림은 성별에 따라 할 사람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일상의 주인인 각자 개인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는 것. 아마 그가 한국 남자였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아닐 것이다. 누나가 여동생이 아내가 엄마가 오직 여자가 청소를 빨래를 설거지를 요리를 하는 거라 보고 배우고 받아먹고 자라서 집안일에 관심 없는 여자를 살림하지 않는 여자를 이상하다 ‘이기적이다’ 문제있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오히려 여자 친구가 애인이 제 집에 놀러 와서 밥 해주고 요리해 주길 청소해 주길 내심 기대하고 해 주면 좋아하고 사랑한다 말했을 것이다.
한 번은 애인에게 물었다. 내가 이기적이야? 애인은 이상한 질문도 다 있네라는 투로 반문했다. 네가? 전혀 아닌데. 남을 잘 배려하고 친절한 사람이잖아. 왜 그런 소리를 해? 부모님 학교 친구들 자라면서 하도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청소 설거지 안 한다고 이기적이라는 건 웃기잖아. 넌 이기적인 게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거잖아. 그런 말을 너한테 한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
그는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야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로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도맡던 엄마는 어느 날 자식들을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난 엄마일에 직장일에 너무 힘들다. 그래서 오늘부터 너희들 엄마는 엄마일을 졸업한다. 너희들도 밥 해먹만큼 컸으니 스스로 챙겨라."
우와. 당시 만난 적도 없는 그의 엄마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애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한 후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며 덧붙였다.
한국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난 내 황금 같은 이십 대 삼십 대를 한남을 만나 욕먹어가며 다투고 싸우며 잔소리하는 그의 청소부 파출부 돌봐주는 엄마로 살지 않아서, 결혼하고 아내로 며느라기로 살지 않아서, 허구한 날 "이기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부당한 비난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 큰 가르침을 준 사람을 만난 걸 그런 남자들을 사랑한 것을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남’은 욕도 혐오도 아니다. 한국 사회가 불알 달린 게 훈장이고 완장이고 왕관인양 남자라서 추켜주고 우쭈쭈 해주고 기를 잔뜩 세워준 결과 대다수의 한국 남성이 못난 자신에 대한 냉철한 성찰과 균형 잡힌 세계관 대신 남자니까 뭐든 못 먹어도 고하는 막무가내 정신에 자기반성을 자기 비난으로 여기는 자의식 과잉 즉 남성우월주의의 화신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한국 남성 평균치를 지칭하는 한국 남성 일반 명사다.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 모자라면 주제파악이 덜 되었으면 한국 남성이라는 말에도 발톱을 세울까.
한국 여자들은 남자를 만날 때 조건을 따져야 한다. 조건 따지는 여자를 욕하는 남자들은 비난할 자격이 없다. 조건은 남자들이 더 따지는 법이니까. 겉으로야 아닌 척해도 얼굴 예쁠 것 살림 잘할 것 애 잘 키울 것 직장 탄탄할 것 우리 부모님에게 잘할 것 즉 일과 살림에 완벽하고 외모도 예뻐야 하는 현모양처 슈퍼우먼을 원하는 게 남자 아니던가.
여자들이 데이트 비용 등등 남자들 돈 남자의 경제력을 따지는 속물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이런 말을 하는 남자치고 제 자신이 얼마나 속물인지는 계산에 넣지도 않는다. 한남들 머릿속에는 따지는 속물스런 여자는 있어도 따지는 속물스런 남자는 없다.
그런데 돈 있는 남자의 그 돈이 내 돈인가? 남자 돈이지. 세상에 공짜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지랄한다. 거저 주는 돈은 대가가 있다. 남자가 돈으로 왜 선심을 쓰고 여자가 왜 돈 있는 남자를 원하는가. 여성들이 능력으로 남성과 동등한 실질임금을 받는 사회가 되면 어떨 거 같은가? 그러면 남자가 건네주는 돈으로 굳이 비굴하게 안 살아도 된다. 뭐든 내 손으로 벌어 쓰는 내 돈이 가장 기분 좋고 편하다.
뇌가 섹시한 남자는 바로 내 애인 같은 남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보이지 않는 뇌를 그것도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남자가 했다고 대단한 듯 추켜주는 바보 같은 문화라니. 뇌섹남은 외모가 한참 쳐지는데 주둥이만 살은 못난이 남성들이 제 뇌주름에까지 남자로서 우월성을 부여할 것일 뿐이다. 그 시간에 제 뱃살을 섹시하게 가꿀 노력이나 좀 하지. 꼴불견이다. 사실 난 뇌가 섹시한 남자 따윈 관심 없다. 그런 건 나한테도 있다. 외모가 섹시한 남자면 된다. 속물이라고? 안 될게 뭔가. 난 속물이라서 쥐뿔도 아닌 게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 어쩌고 하는 못생긴 남자는 사절이다. 못나면 마음이라도 착하던가. 아니다. 착한데 보수적인 것도 질색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남자는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
어린 친구들 후배들 젊은 여성들이여. 21세기에도 한결같이 불알 두쪽 운운하며 변하지 않는 한남을 사랑해주지 마라. 그럴 가치가 없다. 시간낭비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남자는 당신이 못 바꾼다. 언젠가 변하겠지 기다리다가 변하는 건 여자인 당신이다. 세상은 넓고 세계는 넓고 남자는 많다.
한남들이여. 정신 바짝 차리고 모르면 배워라. 배우고 깨져라. 남성이라는 딱지 그 기득권과 스스로 싸워라. 그래야 이 사회가 주입한 ‘한국남성‘ 남자다움이라는 주체 없는 허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진실로 자유롭고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