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자연사하자!

질병에 대한 사색 5

by 홍재희 Hong Jaehee



도합 11주 거의 석 달 동안 책상 앞에 앉아 꼬박 모니터만 쳐다보는 일을 했다.

하루 평균 6시간 많으면 8시간. 마감이 가까워지니 급해져서 거의 10시간까지.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아니 밥 먹으면서도 의자에 껌딱지처럼붙어 있었다.

내가 미쳤지.

정확히 세어보니 494편의 영화를 눈알 빠져라 봤다. 정말 빠져 구를 뻔.

올드보이가 아니라 올드걸 오대수의 만리장성 구중심처 자발적 유폐 감금 생활을 쫑! 낸 그날.

드디어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흠뻑 젖어서 앗싸! 음악 틀고 한껏 기분을 내던 주말 아침이었는데

커피 한 잔 들고 의자에 앉다가 허리 삐끗. 사래가 들려 기침하다가 그대로 한 방.


그리고 지금까지 한의원과 정형외과 순례다.

엑스레이를 본 의사는 혀를 끌끌 찬다.


- 허리가 원체 약하시네요. 흐음…. 과거 예전부터 안 좋은 거 같은데.

- 아, 이십 대에 교통사고가 났었는데 그때 허리가.

- 5 6번 요추 사이가 꽤 좁아졌네요. 이러면 앞으로 디스크가 올 수도 있습니다.

- 디스크요?


수능 정답 번호를 줄줄 읊는 듯한 의사의 말에 괜히 뿔이 나서 어머니가 중증 디스크에 척추협착증으로 수술받은 환자인데 이것도 가족력인가요?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의사가 날 한번 슬쩍 보더니 피식 웃는다.


- 디스크는 유전이 아네요. 본인 탓이지.

- 아.. 눼..... 훌쩍...... 그렇죠 네....


속으로 내게 욕을 퍼부었다. 바보 천치. 본전도 못 찾을 소리나 해대고. 내 머리를 찧고 싶어 지는군.


- 척추를 지탱하는 힘줄이 너무 굳었는데요. 이럼 작은 충격에도 근육이 놀래서 무리가 가죠. 무거운 거 들지 말고 오래 서 있어도 안 되고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도 저얼~대 안됩니다. 정 앉아 있어야 하면 꼭 스트레칭하세요.


뭐여!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겁니까? 도대체 그럼 되는 게 뭐여!? 속에서 부글부글. 아니! 영화를 보든 글을 쓰든 앉아 있지 않으면 제가 일을 어떻게 합니까? 된장! 일을 아예 하지 말란 소리지. 끄응....


- 그리고 보아하니 살이 좀 찌셔야겠네요. 체구가 작고 마른 여자분들이 근육도 없어서 더 약해요. 나이 들수록 골다공증도 빨리 오고요. 아시겠죠?


의사의 명랑한 조언. 가뜩이나 의기소침해진 내게 최종 한 방을. 염장을 지르시고 마침표 꾹.

밥벌이하려고 앉아서 영화만 보다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굳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님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전설의 그 또는 그녀는 아마도 허리 디스크 환자를 말한 건지도 모른다.

영화 촬영 나가다 자동차 전복 사고가 났었던 옛일이 떠오르고 카메라 들고 트랙 운반하다 허리 삐끗한 일도 떠오르고 책 쓰다 어깨 목이 굳어 돌릴 수가 없어 부랴부랴 병원으로 직행한 일도 떠오르고 십자인대파열 수술 후 누워서 글 쓰고 악착같이 영화 보며 아르바이트하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사주에 몸에 칼을 많이 댄다더니.... 클클클 쓴웃음이.......


반성의 반성. 왜 난 뭐든지 적당히 중간을 모르는 거냐. 매사 잠시 멈춤을 생활화해야 하건만. 한 번 꽂히면 쉼 없이 달리는 못된 습을 버리지 못하니. 이제 이팔청춘도 아니고 브레이크 없이 마구 달리면 탈 나고 망가지는 나이가 되었는데.


연일 35도 이상 폭염이 기승인 요즘. 물리치료하며 침 맞고 핫팩 찜질까지. 에어컨 선풍기 없이 뜨거운 핫팩을 허리에 대고 땀을 줄줄 흘리며 누워 있노라면 삶이 무엇인가라는 명상이 저절로. 푹푹 찌는 무아지경 그 속에 깨우침이. 등짝이 불판 위에 지글지글 익는다. 오호라! 이열치열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로구나. 참을성과 인내력을 기르는 극기의 신세계. 더위 안 타고 냉골인 나니까 이나마 버티는 거라고. 얼마나 다행이냐 이것도 나름 복인거지. 오래 앉아 있지 말라 말라 말라~ 그러니까 난 역시 일하지 말고 놀고먹어야 할 팔자인 건데! 돈 벌려다 병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약 먹는 아이러니. 돌고 도는 인생은 요지경.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놀고 있다. 종일 누워 있다가 잠깐 산책 그리고 다시 누워 있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 밥 먹고 도로 눕는 일상으로. 내 팔자가 상팔자.



사주 공부를 한 친구 한 명은 날더러 골골 팔십 할 거라며 사주에 토가 많아 흙 해에 뼈와 소화기능이 탈이 날 테니 삼 년마다 조심하라 했고, 베프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장난기 가득한 쓴소리를 했다.

'쯧쯧쯧. 몸뚱이는 열성인데 타고난 머리와 낙천성은 우성이구만.'


우리는 키득키득키득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농담도 잘하고 애정 넘치는 내 사랑스러운 친구들. 귀요미들. 하트 뿅뿅.

얘들아, 우리 모두 자연사하자!





2018년 7월 29일 일기를 다시 읽는다.

나 자신에게 너 참 기특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타고난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골골 팔십 할 팔자라면

자기 관리의 끝판왕까지는 못 되어도

최소한 가까운 이들에게 남에게도 민폐는 안 끼칠 정도로는 돼야지. 몸 관리는 기본이어야지.


몸은 영혼이 깃든 집이라는 말이 있다.

이생에서 내가 살다가 집인 이 몸을 잘 보살피고 돌보고 귀하게 다스리다 고이 반납하고 떠나고 싶다.

그게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


갈 때가 되면 내 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미련한 저와 함께 살아주느라 모두 고마웠어요.

내 몸을 구성하는 30조의 세포들이여,

날마다 태어나고 죽는 3300억 개의 세포들이여,

1초마다 교체되는 380만 개의 세포들이여,

사람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우주 탄생의 비밀.

매일 태초의 순간이 우주의 빅뱅이 일어나고 별이 탄생하고 소멸하고

진실로 매 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다웠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생이라는 그 시간 동안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느라 수고했어요.

이제 때가 되었어요.

저의 집이었던 세포들이 떠나요.

그래서 저도 이제 홀가분하게 떠나요.

다시 우주로 떠나요. 내가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요.

명랑하게 안녕!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고 있는 나라’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7.5%이며, 2025년에는 20%를 초과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기간이 오스트리아 53년, 영국 50년, 미국 15년, 일본 10년이었던 데 비해 한국은 고작 7년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뿐만 아니라 고령인구 비율은 증가하는 반면, 이들을 부양해야 할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급격히 감소하는 인구절벽 현상이 이미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할 노인 수인 노년부양비는 2020년 22.5명에서 2030년 30.6명에 이르며, 2040년에는 63.4명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돌봄 서비스 현장은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초고령사회 한국에서 앞으로 개인의 질병은 더 이상 개인만의 불행이 아닐 것이다. 백세시대. 질병으로 시달리는 노년의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도 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도,

미래의 젊은 세대에게 부양과 간병의 사회적 책임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초고령사회에서 자기 관리는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가 아니라 생존력이자 사회적 책무다.

홀로 늙어갈 미래에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는 일상은 기본값일 것이다.


나는 늙어서 병실에서 호흡기로 연명하다 죽는 게 아니라

밥 먹고 치우고 똥 싸는 일상을 스스로 영위하다

연명치료 대신 집에서 홀로 숨을 거두는 노년을 지향한다.

무엇보다 자연사라는 운이 따르지 않을 경우 스스로 생을 끝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장 뤽 고다르 감독과 배우 알랭 들롱이 조력자살을 선택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십분 이해가 갔다.

삶에 지쳐서든 병마에 시달려서든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안락사든 조력자살이든 존엄사든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간에 나 역시 그 같은 자유죽음을 선택하기를 간절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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