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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성북동에서

밤마실 나들이

by 홍재희 Hong Jaehee




밤이 기울고 아침빛이 창에 어릴 때까지. 고작 서너 시간 까무룩 눈을 붙였을 뿐인데도 정신이 샘물처럼 맑았다. 몸도 마음도 엄마 뱃속의 태아로 돌아간 듯 평온했다.


방에서 넌지시 뜰을 내다보는 맛. 쪽마루에 앉아 도란대는 멋. 아침햇살이 마루결을 따라 아롱대는 순간 가슴속 깊이 충만함이 차올랐다. 비좁고 오래된 옛집일지라도 이곳은 정말 집이구나 집다운 집 집 같은 집이구나. 사는 이 그만의 멋과 맛이 집안 곳곳에 향기롭다. 기쁘게 취한다. 그것이 개성이고 취향이다. 그리고 이는 돈의 문제가 아니다. 안목이리는 취향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고 아껴야 생긴다. 작고 소박한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시선 곧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결국 개성과 안목 그리고 취향은 솜씨 맵씨 마음씨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가능하다.




외부와 차단된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사는 한국인들집이 사는 곳 보금자리가 아니라 수익성을 따지는 재테크가 되어버린 한국에서는 진짜 사람 사는 '집'을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집은 사는 이의 손길이 눈길이 마음씀씀이가 닿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이토록 정감 어린 풍경을 만들려면 돈이 아니라 날마다 사랑으로 보살피고 가꾸어야 한다.


한옥의 아름다움. 모서리와 문지방 서까래와 귀마루 창틀과 문짝 쪽마루와 안채 광과 마당. 구불대는 곡선 나뭇결이 주는 따스함. 어느 한구석도 모나지 않은 넉넉함. 빛이 구석구석 집 안으로 스며들고 바람이 쪽마루에 앉아 쉬어가며 하늘이 마당을 포옥 감싸안는 집. 바람이 들고 나는 집. 흐르는 시간이 보이고 세월이 곳곳에 나이테를 새기는 집. 아이들은 바로 이런 집에서 꿈을 꾸고 꿈을 키우고 꿈을 먹고 자라야 한다.


아아, 나는 그만 하늘로 난 창을 지닌 다락방과 꽃들이 만발한 마당과 반질반질 윤나는 마루가 있었던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온 것만 같았다. 그립고 그립다. 마루에 대자로 누워 햇살을 만끽하고 싶었다. 내 맘을 알아챘는지 고양이 꽃송이 햇살 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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