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단상

Drive my car on the road

by 홍재희 Hong Jaehee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자신만의 차를 몬다."

Drive my car on the road


1.


나는 지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십 년째 같은 집에서 날마다 비슷한 일상을 산다. 그러나 지겹지는 않다. 일견 내 말이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 사고 없는 평범한 일상이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다음날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으며, 나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를 게 없는 하루가 무사태평하게 지나가서 좋고 그래서 지루한 일상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거나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래서 더 좋다. 일상의 소중함과 인연의 귀중함이야말로 지루한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묘미가 아닌가.


한 때 밖으로 길 위를 떠돌았다. 부모가 애인이 있었어도 마음을 둘 집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내가 찾아 헤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였을 수도 있다. 아마도 불안과 분노가 삶의 동력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U2의 노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좌우명으로 삼고 다녔다.


돌이켜보면 이십 대에는 일하거나 놀거나 술을 마시거나 취하거나 섹스를 하거나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지겨운 걸 참지 못했다. 지루한 영화, 지루한 대화, 지루한 사람, 지루한 섹스, 지루한 관계가 지겨웠다. 서른을 넘어도 똑같았다. 지루함과 지겨움의 차이. 스스로를 지겨워하는 것과 타인을 지루해하는 것. 나 자신을 지겨워했던 건 자기혐오였을 것이고 타인이 지루했던 건 교만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쪽으로든 남과는 아무 상관없는 자기기만이었을 뿐이다.


긴 시간 나는 나 자신을 찾아 헤맸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랐고 나를 찾기 위해서는 안이 아니라 밖에서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불화하는 내가 곧 나인줄 알았다. 착각했다. 체험이 곧 경험이 되지는 않는다. 살면서 겪은 모든 일들이 뿌리를 내려 삶의 자양분이 되려면 차를 우려내듯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은 과정이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성공이 아니라 죽음으로 완성된다.


2.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책이나 영화를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그렇다면 나는 무얼 보고 나인줄 알았던 것일까. 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과연 나인가. 인생의 중요한 과제가 뭘까. 자신의 다양한 자아를 통합하는 것이다. 페르소나를 하나의 자신으로 통합할 수 있는 것. 페르소나에 잠식되거나 하나의 페르소나에 짓눌리거나 하나의 역할에만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 진정 사람이 되어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 그것.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의 시작이다.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를 알고 그 왜를 인정하고 그 왜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라고 다 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기 싫은 자신도 있고, 인정하기 싫은 자신도 있으며, 부끄러운 자신도 있고, 미워하는 자신도, 감추고 숨기고 싶은 자신도 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이불킥을 하는 이유다.


어디서 누가 한 이야기인데 과거의 내 모습은 집에 도착한 택배와 같다고. 주문한 사실조차 까먹고 있다가 어느 날 문 앞에 떡, 하니 와 있는 택배처럼. 누가 시켰지? 내 건가? 하는 의문과 아, 그랬지! 하는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드는 택배가 바로 과거라고. 그렇다. 과거의 나는 타인이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나의 타자다.




극장에서 본 <드라이브 마이카>를 최근에 또다시 봤다. 이번에 새로 꽂히는 말이 있었다. 다카츠키가 가후쿠에게 하는 말. 마치 관객에게 말하는 것처럼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 감독이 자신에게 너에게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겠지.


‘진실로 타인을 보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역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고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그의 얼굴에서 그의 말에서 그의 모습에서 그의 삶에서 나를 보는 것.

그것이 자기 사랑의 시작이다.

사랑은 먼 데 있지 않다.


- 깨닫기까지 너무 멀리 돌아왔다.

저 멀리 먼 곳으로 먼 데서 집을 찾아 헤맸는데

여기 있었다.

내 안에 나라는 집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