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by 홍재희 Hong Jaehee



마종기 시인 시작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를 읽으며.


어쩌다 보니 마음 쓰는 친구들이 바다 건너에 흩어져 산다. 알음알음 알게 되거나 우연히 가까워진 이들 중에도 이역만리에 삶의 터전을 잡은 사람도 많다. 내 주변에 디아스포라가 많은 까닭은 아마도 피붙이가 그리 살고 있어서일까. 남북 분단으로 원치 않은 디아스포라로 이남에서 평생을 살다가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명을 달리 한 아버지의 그림자가 내 무의식 언저리에 깊게 드리워져 있어서. 이십 대 도망치듯 한국을 등지고 미국에서 이민자 1 세대가 된 언니와 역시 베트남 이민자의 자식으로 언니를 만나 가정을 꾸린 이민자 1. 5세대 형부와 그리고 둘의 자식으로 다시 이민 2세가 된 조카의 존재가 내 이야기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이민자들이 그렇듯 수십 년 동안 두 개의 다른 나라에서 내 삶을 살았다. 비록 몸은 외국에 있어도 집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했고 잠꼬대도 모국어로 했고 꿈도 대부분 모국이 배경이었다. 글도 모국어를 더 많이 사용했고, 도대체 의식의 체계 자체가 모두 모국식이 었다. 내 생활은 이렇게 두 나라의 살림이었고 두 개의 일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두 나라가 모두 편안하지 않았다. 내가 자꾸 외계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디에 세워놓아도 풍각쟁이나 희극배우 혹은 패배자 같이만 생각되었다. 나는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갔고, 그건 꽤나 참담한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20대 청년이었지만 50대는 된 듯 생각이 많았고 늘 머리가 무거운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 - 마종기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중에서


수년 전 언니와 다퉜던 기억이 떠올랐다. '넌 내가 여기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하나도 모른다. 놀다 가는 주제에 네가 뭘 알아?' 가시 돋친 그 말에 나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고 그대로 입과 귀를 닫았다.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우리는 서로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로 작별했다.


마종기 시인의 글을 읽으니 꽁꽁 동여맨 상처가 다시 벌어져 불에 덴 듯 욱신거린다. 가슴이 제 혼자 바보처럼 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삼고 이미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고 있는 형부에 비해 언니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그 경계에 서서 자신과 힘겹게 씨름하고 있었다. 두 개의 정체성 두 개의 의식 속을 불안하게 오고 가는 언니 눈에는 나는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 잠시 방문한 여행자 속 편한 백수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리라. 언니 말이 맞았다. 전 존재를 던져 이방인으로 살기에는 난 겁쟁이 었다. 언니의 정처 없는 외로움과 상처받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에는 난 게으른 위선자였다. 공감은커녕 최소한의 상상력조차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스트레스와 벽에 부딪혀 언제나 메아리로 되돌아왔고 디아스포라인 언니의 삶은 인터넷 가십 기사에 오르는 연예인에 대한 관심보다도 더 멀었다.


'난 여기도 저기에도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이방인 같아.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떠다니는 것 같아. 붙박이로 살고 있는데도 여기에 내 집과 직장과 일이 있는데도 뭔가 불안정한 느낌이 들어. 완성되지 못한 것 같아. 한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나 봐.'



외국 사는 친구에게 자조와 푸념이 뒤섞인 쓸쓸한 고백을 듣는다. 여기도 저기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국제 미아가 되어버렸어. 말끝에 슬픔과 고독이 묻어 있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동조할 수도 공감할 수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 대부분이 한 세계조차 다 알지 못하고 가는데 너는 두 세계 또는 더 많은 세계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알고 있는 거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게 아니라 두 세계를 다 네 품에 안고 있는 거야. 다 네 안에 있는 거야. 너는 이방인이 아니라 지구인 세계인인 거야.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부드러운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하다.”

- 빅토르 위고

이제 이주와 정주는 다른 이름이 아니다. 같은 이름이어야 한다. 이방인은 내 이름 우리의 이름이어야 한다. 나는 희망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초보자'에서 '이미 강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그리하여 어느 한 지역 한 나라 국경을 너머 전 세계를 타향으로 여기는 그대는 당신의 존재 그 자체로 완벽하기를. 그러므로 당신은 반쪽이 아니며 패배자도 풍각쟁이도 희극배우도 외톨이도 아니다. 당신은 당신으로서 완전하다. 삶 그 자체로서 아름답다. 별이 된 아버지 그리고 언니, 길동무들, 여행자들, 바다 건너 친구들이여. 아름다운 이방인이여. 당신을 부르며 나도 살아간다. 그대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오늘도. 그러니 그대 외롭지 말아라. 세계를 타향으로 보는 한 너와 나 우리는 이미 우주인이므로. 물이며 구름이며 바람이며 바다로 가는 꿈이므로.


비 오는 날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