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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된장찌개

by 홍재희 Hong Jaehee



김치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된장 없이는 못 살 거 같다. 외국에 나가면 집에서 해 먹는 된장찌개가 제일 그리웠다. 된장찌개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속이 부대끼고 안 좋을 때는 된장찌개에 누룽지나 숭늉을 먹어야 속이 풀린다. 출출할 때 음식에 물리고 물릴 때 불현듯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시골된장 집된장 팍팍 풀어서 호박 감자 쓱쓱 썰어 넣은 된장찌개의 구수하고 깊은 그 맛. 소박한 된장찌개에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 한 숟가락, 그 위에 윤기 좔좔 김 한 장을 올리면…… 상상만 해도 군침이. 내가 영락없는 한국인이구나를 자각하는 순간. 내게는 된장찌개가 영혼을 달래는 음식, 곧 소울푸드다.


된장찌개를 이렇게 좋아하는 나야말로 된장녀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ㅋㅋ


언제나 된장찌개가 진리입니다. - 레알 된장녀 백.



원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기 때문에 친구들이 맵찔이라고 놀린다. 매운 김치찌개나 빨간 순두부찌개는 속이 괜찮을 때 종종 먹는 별미다. 속이 안 좋을 때는 식당에서 순두부찌개에 고추기름 고춧가루 청양고추를 몽땅 빼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럼 맛없을 텐데 고개를 갸우뚱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주인. 전 백순두부 심심하니 맛있답니다.


이사 온 후로 십 여 년간 발이 닳도록 드나드는 단골 동네식당이 있다. 식당 주인은 내 식성을 잘 알아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또 속이 안 좋아요? 하면서 나를 위한 특별 백순두부찌개를 끓여주신다. 어찌나 심성이 고우신지 눈물이 울컥. 이게 단골 식당의 묘미 이웃과 벗하는 사람 사는 맛이지.




동네에 온 트럭 장사에게 멀리 경상도 산청에서 키웠다는 표고버섯 오천 원어치를 샀다. 슈퍼에서 파는 포장한 버섯보다 향도 진하고 살이 토실토실. 식감이 고기보다 좋다. 표고버섯을 사놓고 보니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나는 마트에서 파는, 청정원 햇살 담은 등등 브랜드가 붙은 공장에서 제조한 시판 된장을 사지도 쓰지도 않는다. 농부가 직접 담근 된장이나 생협에서 파는 된장 또는 개인이 만들어 파는 시골 된장 옛날 된장을 사서 쓴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된장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장을 좋은 걸 쓰면 요리를 좀 못해도 찌개맛이 산다. 된장이 살아있구나 된장찌개는 살아 숨 쉬는 맛이구나를 느낄 수 있다. 좋은 장에서는 오랫동안 숙성 발효시킨 장에서 우러나는, 깊고 그윽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마트에서 파는 시판 된장 따위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시원시원한 바이올린에서 첼로의 감미로움을 지나 콘트라베이스의 묵직하고 단단한 맛. 결이 하나하나 살아있다. 좋은 된장의 맛은 오케스트라 교향악처럼 겹겹이 다채롭고 바닷속 심연처럼 깊디 깊다.



감자와 두부가 없어 호박과 표고만 넣어 된장 풀어 자작자작한 찌개를 하고, 지난번 해 먹다 남은 단호박과 한 입 남은 당근 조각에, 까맣게 잊은 채 냉동고에 던져둔 말린 취나물을 올려 밥을 했다. 시금치 남은 거로 살짝 데치거나 그대로 소금 간에 발사믹 식초 올리브 뿌려 샐러드. 냉장고에 남은 재료 이렇게 깨끗하게 비울 수 있다.


오늘의 밥상.


단호박 당근 취나물 영양밥과 표고버섯 된장찌개 그리고 파프리카 시금치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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