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기록 2
우리는 일상의 권태에서 탈출하고 파서,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또는 스스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찾아 여행을, 길을 떠난다.
그러나 정작 내가 길 위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길 위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출발점에서 바랬던 욕망과는 정반대의 진실이었다.
일탈의 기쁨도, 해방감도, 자유에 대한 갈망도 잠깐이다.
혼자 떠나던 여럿이 함께 떠나던 이질적이고 낯선 공간에서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처없이 부유하면서 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소중함, 관계의 소중함이라는 역설.
환상적인 경치도, 멋들어진 기념물도, 황홀하기 그지없는 건축물도 그 혼자서는
아름다운 풍광 그 자체일 뿐. 관광엽서 사진 한 장일뿐.
여행 을 다니는 중에 찍은 사진 한 장이 단 하나의 의미가 되는 순간은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을 때였다.
그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장소와 그 곳이 비로소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 순간 낯선 이녘의 공간은 이방인인 내게 말을 걸어준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낯선 것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바로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의 수많은 인연이,
그들과 만나 웃고 떠들고 스치고 떠나간 기억이,
그들 옆에서 때로는 그들 뒤에서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여행의 끝에서 여정을 마감하고 돌아갈 때 즈음 서서히 깨우치게 된다.
우리는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길을 떠나지만
실은 그 관계가 없이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사람은 자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수천 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낯설고 먼 곳으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난다.
그리고 길 위에서 수 차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섣불리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기대하지 않으면서 너그러이 기다리는 법을 배우면서
마침내 그 길 위에서 깨닫는다.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잊고자
어떻게 해서라도 벗어나고만 싶었던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멀리 돌아 돌아 다른 데도 아닌 여기 길 위에 서서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끄덕끄덕 긍정하면서
다시 그 길 위에서 깨닫는다.
이 길은 바로 내가 매일 걸었던 내 집 앞의 그 길과 다르지 않았음을.
먼데서 찾았던 길이 어제도 걸었고 그제도 걸었던 그 길과 똑같았음을.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가 내 안에 있었음을.
사람과의 관계에서 삶의 온기가 피어난다는 것을.
결국, 서로라는 존재를 통해서 삶의 열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노랫가사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꽃은 아름답다. 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더 아름답다.
사람은 아름답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꽃처럼 서로를 사랑한다고......
PRO VOBIS ET FROMUTIS........
제주 해안도로 자전거 일주 여행. 잠시 멈춰 서서 찍다.
인생이 누구나에게 단 한 번뿐인 여행이라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라면
우리가 태어나 떠나왔던 그 곳으로 돌아가는 순환이라면
힘들면 쉬었다 가자.
천천히. 천천히.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