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지인 K 감독이 카톡으로 연락을 해왔다. 장문의 글을 덧붙여.
ㅡ 10년 전 오늘 이런 포스팅을 했다고 페북이 알려주네요.
불현듯 생각났다. 십 년 전 그는 <아버지의 이메일>에 대한 글을 썼고 그 글을 내게도 보내줬다. 영화 개봉에 대해 사적으로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찾아서 내 영화를 봐준 것에 정말 놀랐고 매우 고마웠는데 진심으로 글까지 썼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고단한 밥벌이에 치여 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퇴근 후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직장인 감독 지망생. 언젠가 반드시 영화를 찍겠다고 꼭 감독이 되고 말겠다고 다짐하던 K. 그 후 그는 독립 장편 영화를 한 편 만들었다. 그는 결국 해냈고 지금은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ㅡ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 영화 작업하고 있어요?
그의 질문에서 시작한 서로의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이야기.
부산에 살고 있는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는 조만간 일 때문에 서울에 온다고 했다.
그때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나는 십 년 만에 다시 K의 글을 읽는다.
2.
영화 <국제시장>의 몇몇 장면들을 보며, 윤제균 감독이 대놓고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를 의도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지 않게 깨달았지만, 새삼스럽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올해 개봉된 홍재희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이 떠올랐다.
<국제시장>이 그 자신 대학시절 유명을 달리한 윤제균 감독의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듯,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의 이메일> 또한 외롭게 생을 마감한 감독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생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하지만 후자는 헌사라기보다는 아버지 개인의 삶을 관통해 온 현대사와 그 그늘진 굴곡 속을 살아온 보편적인 아버지(들)의 삶에 대한 비망록에 가깝다. <국제시장>의 덕수(활정민)는 흥남철수 때 부산으로 내려온 실향민이고, <아버지의 이메일>의 고 홍성섭 옹은 전쟁 이전에 월남하였으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다시는 북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흔을 공유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거의 똑같은 시대적 배경과 사건들 그리고 흡사한 가족사의 희비극을 담고 있는 극영화 <국제시장>과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이 견지하고 있는 관점은 천양지차다. 두 영화 모두 동란과 월남전, (광부) 파독, 사우디 파견, 이산가족 찾기 따위의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서 '아버지'와 그 세대가 겪은 일화들을 영화 내러티브 전면에 걸쳐 할애하고 있다. 그 시기 4.19와 5.16 쿠데타, 유신과 10.26에 이은 12.12, 5월 광주와 87년 민중항쟁 등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묘사가 이들 영화에서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두 영화 속의 아버지들은 그런 역사적 사건들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인물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전혀 무관한 존재일 수는 없다. 휴전 후 삼십 년이 흘러 흥남철수 때 헤어진 아버지와 어린 여동생을 찾기 위해 다시 전쟁의 상흔에 다가선 <국제시장>의 덕수와 마찬가지로 이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찾아 헤맸던 <아버지의 이메일>의 고 황성섭 옹 모두 그들 자신이 인지하고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려든 인물들에 다름 아니다.
두 영화가 다른 지점은, 그들 자신의 아버지가 부재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각각 월남전 파견, 파독, 사우디 파견으로 이어져 온 ‘먹고살기 고단했던’ 시절의 사건들과 얼마나 긴밀한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지에 대해 <아버지의 이메일>의 홍재희 감독은 명확하게 바라보려 했고,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외면하고 있다는 데서 나타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먼 훗날 2014년 4월 16일의 참사가 누군가에게는 해양 교통사고 정도로 기억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집권세력의 컨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않아 빚어진 초대형 인재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해당 사건들을 다루는 문학이나 영화 텍스트에서 작가적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국제시장>에서처럼 어린 베트남 소년에게 초콜릿을 준 고마운 ‘따이한(한국인)’이 존재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기 베트남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영화 속 덕수와 같은 선한 따이한보다는 양민을 학살하고, 부녀자들을 희롱한 악한 따이한(집단으로서의 한국인들)으로 일반화되어 있을진대, 어쨌거나 영화에는 초콜릿을 줬기 때문에 폭탄 사고에서 구해야 할 선한 한국인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그 선택은, 당연히 작가로서, 감독의 몫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물론 묻고 싶지 않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이 흔한 세상이다.
물론, 전자는 독립 다큐멘터리이고, 후자는 상업 극영화다. 사적 다큐멘터리인 <아버지의 이메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한 개인이 현대사의 풍랑과 무관하게,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데 전투처럼 임하느라 정치와 사회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역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속의 두 아버지들은 그렇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홍재희 감독은 임종 직전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공들여 써 보낸 마흔세 통의 이메일을, 그것도 아버지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들여다보다 뭔가 아차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보낸 이메일을 통해 그녀는 아버지를 둘러싼 가족사의 비극이 시작된 원인이 현대사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건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음을 다시금 절감했을 게 분명하다. 현대사의 명암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하는 아버지란 존재의 명암에 대해, 그녀는 더도 덜도 없이 낱낱이 알고 싶었을 것이고, 그 행위는 아버지란 존재를 더 이상 증오하거나, 소원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함으로써 소통하려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아버지의 이메일>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감독 홍재희의 내레이션에 묻어 있는 그 절제된 감정이 이따금 소름 끼쳤지만, 그러지 않고서 아버지의 지난 70여 년의 세월을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 들려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 홍재희는 흔히들 “죽고 나서야 그리워지는 존재”로 부르는 아버지가 이메일을 통해 다시 찾아왔을 때, 섣부른 미화와 헌사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판단했을 게 분명하다. 반면, 감독 윤제균은 벌써 이십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 영화로 만들겠다고 꿈꿔왔지만, 이미 고인이 되신 당신(들)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을 객관화보다는, 위인화(偉人化)를 통해 좀 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 곧 판매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혔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투자사가 현 정권에게 찍혀, 찍소리도 못한다고 전해지는 기업 아닌가. 당연히 그들에게도 누를 끼칠 만한 이야기를 영화에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후대로서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과 그 변방에 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관점’을 가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밖에 없다. 철저하게 프로파간다화로 향하거나 탈정치화하거나. 당연히 윤제균의 선택은, 후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탈정치화 전략은 이미 그가 전작들에서도 보여 온 관점이므로, 나는 윤제균 감독의 영화하는 방식에 대해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가 선택한 영화적 전략이다. 언제나, 그가 바라볼 수 있는 관점과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에게 전혀 다른 관점과 내러티브 패턴을 요구하는 것은 과욕이다. <국제시장>에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 <마더> 등을 관통하는 관점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쉬운 점은, 윤제균 감독이 <국제시장>을 연출하며 <포레스트 검프> 같은 먼 나라 이야기도 레퍼런스로 삼는데, 똑같은 시대적 배경과 유사한 소재로 영화화된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의 이메일>은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던 ‘현실’이자 ‘사실’에 있다. ‘사실’을 바라보고, 바로 보기를 어쩌면 현실이 요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국제시장>이 한창 제작될 당시가 이미 <아버지의 이메일>이 첫 대중 공개된 이후일지라도 <아버지의 이메일>이 <국제시장>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가정에 불과하다. 어쩌면 상업 영화에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도록 관객들을 길들이는데 탁월한 선수들이 현재의 영화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 어차피, 영화일 뿐이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시장>을 본 관객들에게 <아버지의 이메일>도 관람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 <국제시장>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먼저, <아버지의 이메일>을 볼 것을 추천하려고 한다. 두 영화가 바라보는 동시대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역사에 대한 기록과 해석의 차이로 어떻게 귀결되는지 곰곰 생각해 보잔 뜻이다. 그래도, 역시나, 영화일 뿐이잖겠는가.
* 뱀발 - 물론 <국제시장>에서 몇몇 경탄할 만한 장면들과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흥남철수 장면이나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한창이던 1983년의 여의도 KBS 장면 등이 그것이다. 덕수 부부가 말다툼을 하는 와중에 울려 퍼지는 ‘국기에 대한 맹세’ 방송 때문에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올려야 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동남아시아 커플에 대한 인종차별적 반응에 이미 노인이 된 덕수가 불같이 화를 내는 상황은 그 순간들이다. 그 외에도 여러 대목에서 이 영화의 미덕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이메일>이 견지한 관점을 <국제시장>에 기대하기란 '결과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국제시장>은 정말 의도적이지 않고서야 <아버지의 이메일>을 관통하는 주제인 현대사와 대다수 소시민 가정을 가로지른 비극의 기원에 대해 외면하거나 아예 탈색시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국제시장>이 불편한 이유는 거기 있다.
3.
2014년. <국제시장> 천만 돌풍. 흥행 대성공.
당시 나는 심심찮게 연락을 받았다.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줄거리와 비슷하더라. 그런데 관점이 다르더라. 차라리 < 아버지의 이메일>이 훨씬 낫다 또는 <아버지의 이메일>은 흥행이 안 됐는데 <국제시장>이 잘 돼서 속상하다 배 아프다는 위로성 발언까지.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다 내 벗이자 지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나를 먼저 알고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서다. 내가 이렇듯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은 전부 내 영화를 어렵게도 발품 팔아 일부러 찾아가 봤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반응에 솔깃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또 영화에 대한 평을 남긴 지인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동시에 <아버지의 이메일> 이 남의 잔치상에 어쩌다 한 번 언급되는 영화가 되어버린 게 씁쓸했다. 어쨌든 그 바람에 <국제시장>을 둘러싼 영화와 무관한, 시끄러운 담론에 관심이 샹겼다.
그러나 <국제시장>을 두고 벌어진 갑론을박, 논란과 잡음은 사실 정작 문제의 진원지도 본질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가속화되는 제작-배급-극장 구조의 수직계열화, 독점자본의 독과점화, 영화 산업에서도 어김없이 벌어지는 양극화다. <국제시장>이 전국 영화관의 모든 스크린을 장악하고 천만을 찍고 있을 때 비슷한 시기에 저예산 상업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흠방)>이 개봉했다. 오래가지 않아 <개훔방>은 전국에 고작 10개 정도 스크린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가족영화를 표방하는 두 영화 <국제시장>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중에 <개흠방>의 완패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질문한다. 베스트셀러는 스테디셀러인가?라는 해묵은 질문과도 동일하다.
흥행 성적만이 작품의 질 또는 좋은 영화, 잘 만든 영화의 기준일까?
<아버지의 이메일> 역시 <개흠방>과 비슷한 수순이었다. 개봉 후 일주일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조조나 늦은 밤 시간대로 배정된 상영 시간. 소위 징검다리 상영. 독립 예술 영화를 홀대하는 극장의 횡포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시장의 논리는 냉혹하다. 독립 영화 배급으로 시장에 진출했던 <아버지의 이메일>은 총 관객수 사천 삼백 여명, 결국 아주 우스운, 초라한 구멍가게 정도 흥행 성적을 내며 막을 내렸다.
좋은 영화든 잘 만든 영화든 흥행하지 못하면 최종적으로는 흥행 실패작, 못 만든, 별로인 영화로 전락한다. 영화를 어렵게 찾아본 사람들이야 다른 말을 하겠지만 스크린 수라는 진입 장벽에 가로막혀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영화도 있었어? '정도로 웃어 넘어갈 뿐이다. 대다수 관객에게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스크린 수가 많다는 것, 예매율이 높다는 것이 아니던가.
<아버지의 이메일>은 독립영화고 <개흠방>은 상업영화다. 그러나 특정 영화가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마당에서는 독립이든 저예산 상업이든 뭐든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영화는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한국에서는 스크린을 한 영화로 몰빵, 천만 달성이라는 숫자에 도취, 몰아주기 바람이 불어주고, 거기에 민족과 애국이라는 이상한 이데올로기까지 합세하면 흥행 성공은 만사형통이다.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있는데도 바꿀 힘도 의지도 없는 현실. 제작자와 배급사와 극장주가 같은 데 무슨 말을 할까. 이러니 힘센 놈이 마음껏 '갑질'을 해도 할 말이 없고 오히려 그놈은 '갑질'이 시장을 확장시키고 기업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이것이 세계화의 바탕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비상식과 불공정이 상식으로 정의로움으로 둔갑하는 이 사회에서 그럴수록 독과점을 막을 제도적 장치, 불평등을 최소한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법적 규제라도 있어야 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이토록 '비민주적인' 나라에서는, '갑'이 하는 일이 정의요 힘센 놈이 진리다.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전 대표의 말처럼 '수요가 아니라 공급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현실'. 관객은 선택권이 없는, 공급자가 공급의 양으로 관객이 선택하게 만드는 상황은 사실 지금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현실이다.
윤제균의 <국제시장>과 <아버지의 이메일>을 동률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 편은 철저히 상업적인 대중영화이자 극영화이고 다른 한편은 감독의 주관적 시선이 절대적인 독립영화이자 다큐멘터리 영화다.
K 감독의 글에서 내 영화가 왜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아니다. 그 사실을 뻔히 알고도 나는 그렇게 찍었다. 한 개인을 위인화시켜서 성공기로 포장하는 것은 사실 쉽다. 하지만 나는 상처를 봉합하고 온 가족이 화해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었다. 이 영화가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극복하려다 아버지와 닮아간다. 니체의 말대로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아버지를 혐오하면서도 (상징계의) 아버지를 죽이지 못하고 결국 현실의 아버지를 닮아가는 존재들. 아버지로 표상되는 근대의 폭력에 잠식된 채 여성성을 거세한 존재들. 상실한 여성성(모성)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존재들. G.G. 융이 말한 대로 아니무스와 아니마의 불균형과 불화 속에서 분열하는 존재들. 존재의 결핍을 원동력 삼아 수난과 억압과 폭력의 반세기 근현대를 관통하고 살아온 한국인들, 그중에서도 가부장 남성들에 대한 성찰과 직시.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성이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기란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 것이던가? 뼈를 깎는 자기 객관화, 자기 성찰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들들의 영화는 아버지와 극복하지도 화해하지도 못하면서 아버지를 '극화', '미화'한다. 하지만 딸들의 영화는 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민낯을 남김없이 '증언' '기록' 한다.
맞다. 나는 K가 지적한 대로 나는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화해와 용서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어떤 미화도 신화도 없이.
남김없이 두려움 없이 ‘기억‘하는 것.
추억하기 전에 먼저 '기억'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