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법도 법이다."
역사적으로 실증된 바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하고 독주를 든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말도 안되는 헛소리가 정설로 한국인들의 뇌리에 박힌 이유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의 선택을 그가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독배를 받았을 거라고 멋대로 추측한 일본제국주의자의 지레짐작이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자의 언어로 일본의 법실증주의 학자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말을 철썩 같이 정설로 믿고 있는 건 일본인과 한국인밖에 없다. 특히 한국인 우리에게는 일본제국주의와 일제강점기 식민지 잔재가 남긴 질기고 질긴 똥이다. 국민교육이란 결국 황국신민교육, 즉 일제국주의에 복종하는 신민을 만드는 교육이다. 나는 그 따위를 교육이라고 받고 자랐다.
철학이 '국민''윤리'란 해괴한 제목으로(국민이 지켜야할 윤리라니 얼마나 기괴한가?) 둔갑하여 고작 남의 것을 소개하고 암기하는데 급급한 학교 교육, 스스로 생각하고 왜? 라고 묻지 않는 수업, 선생이 닥치고 주입하고 학생은 기계처럼 따라하는 입시 교육에 찌들면, 학교 때 밑줄 긋고 외우고 그저 주어들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했어" 라는 개소리를 사실로 믿고 사회 나와서도 (한심하지만) 학교 때 암기한 정보에 불과한 것을 진짜 철학인 줄 알고 살게 된다.
한국인들은 철학자 이름과 같은 정보를 암기했을 뿐 철학을 배운 적도 철학하고 산 적도 없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철학이 뭔지 모른다. 그저 철학을 배우면 돈도 못 벌고 좋은 직장도 못 가고 배 고프고 가난하게 산다고 말할 뿐이다. 철학? 하면 골치 아프고 까다롭고 인생 피곤하게 사는 길이자 사는 데 하등 쓸모 없는 거라 하찮게 간주한다. 돈이면 다 된다라는 걸 자신의 철학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철학은 학교에서 밑줄 끊고 달달 외울 때만 시험볼 때만 논술 점수 따느라 기계적으로 외워 쓰는데만 필요한 게 아니다. 철학은 우리가 살면서 매 시기마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갈등 상황에서 삶의 고비를 겪을 때마다 스스로 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길잡이이자 인생의 버팀목, 곧 지혜가 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가족이란, 우정은, 사랑이란 돈이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나만의 해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철학은 우리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철학은 스스로 왜? 라고 묻고 사유하며 진실을 탐구하고 알아차리고 깨우치는 전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평소에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책을 읽고 답을 찾아나가며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지 않으면, 즉 철학하지 않으면 남들이 멋대로 재단하고 수정한 허구를 사실로 신봉하게 된다. 즉 줏대없이 남 눈치를 보고 남을 따라가며 내가 아닌 남의 생각과 그릇된 생각마저 추종하게 된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기 생각이 없는 이유가 바로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정해준 대로 사는 걸 잘 사는 거로 착각하고, 주어진 매뉴얼 대로 살면 된다고 믿고, 남이 주입한 걸 자신의 생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히, 끊임 없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왜? 질문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가치관과 세계관을 스스로 만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즉 철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 정답은 없다. 자신만의 해답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사람마다 다르며 우리는 각자 그 해답을 찾아가야한다. 이를 배울 수 있는게 철학인데 우리 교육에서는 바로 그 철학이 부재하다.
2.
'악법은 결코 법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이었던가.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란 말을 앵무새처럼 읊는 선생에게 반기를 들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그 말을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다고 선생의 말에 반박했다.
ㅡ 선생님. 악법이 왜 법입니까? 법도 사람이 만드는 건데 사람도 실수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잘못된 악법은 고쳐야지 따라야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그 날 나는 교무실로 불려갔다.
자율 대신 강압과 다양성 대신 획일성만 가득했던 학창시절.
고등학생일 때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었다.
그리고 나는 기질적으로 파시스트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