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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다시 걸을 수 있나?

1-10. 장애 그게 뭔데? 정신 줄 잡기

by 우철UP


기다리던 재활의학과 주치의가 내 몸 상태를 체크하러 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장지와 면봉을 이용해 감각을 테스트하였다. 테스트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화장지를 이용해 다리 전체를 긁듯이 지나가면서 감각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면봉으로 다리 이곳저곳을 눌러보면서 감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팔과 다리의 관절 및 근력의 움직임을 체크하면서 운동기능도 테스트하였다.



테스트가 끝나자 재활의학과 주치의는 내게 조용하면서 은밀한 말투로

“남 일 같지 않아 말씀드릴게요. 젊으신 분이시니, 여기보다 규모가 큰 재활병원으로 빨리 입원하세요”라고 말했다.

난 어리둥절했다. 검진하자마자 다른 병원이라니…….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얼떨결에 물었더니

“우리나라에선 연세대 세브란스가 재활의학 쪽으로 좋아요. 그리고 삼육병원도 좋고, 빨리 알아보세요. 급성기 때가 제일 중요합니다.”

“급성기요?”

“수상 후(다친 후) 3개월이 신경이 제일 많이 깨어나고, 6개월은 조금 더뎌요.”

내가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9개월까지도 살아나요. 하지만 그 수가 많이 줄어들죠. 물론 1년까지도 신경이 살아나는 것으로 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하지만 중요한 건 급성기 때 좋은 곳에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난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여기는 별로 인가요?”

“여기도 좋지만, 급성기 때 병원으로는 추천해 드리기가 어려워요. 남 일 같지 않아 말씀드리는 거니깐 환자분이 판단하세요”라고 말했다.

내 몸 상태를 체크를 했으니 내 몸상태가 너무나 궁금했다. “선생님 제 상태가 좋나요?”라고 물어봤다.

“간단한 검사만 했고요, 담당 교수님과 상의해서 말씀드릴게요” 역시나 정확하고 명쾌한 답변은 다들 피했다.



명색이 대학병원이고, 여기서 수술도 했고, 지금도 입원 중인데, 다른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혹시 ‘여기 재활 병동이 꽉 차고 환자들로 넘쳐나니깐,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그러는 건가’란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그 주치의가 ‘급성기 때 신경을 많이 살려야 해요’라며 말하던 그 얼굴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오후에 담당 교수가 주치의와 함께 왔다.

오전에 체크한 서류를 보면서 내 몸 상태를 다시 체크하였다.

마침 그때 어머니와 형님도 오셨다.

담당 교수님가 내 몸 상태를 진찰하고 있는 모습을 어머닌 초조하게 지켜보셨다.

몸 상태 체크가 끝나자마자 담당 교수님은 어머니께 상당히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흉추 손상이지만 다행히 신경이 끊어진 완전손상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다리 일부 기능 중 앞쪽 허벅지 기능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매우 좋은 징조이지만, 엉덩이, 허벅지 뒤쪽, 무릎 아래는 마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완전 손상이기 때문에 그 기능은 차차 돌아올 가능성도 있어요. 좀 더 정확한 건 근전도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앞쪽 허벅지 기능이 살아 있으니깐 지면을 딛고 일어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걸을 수는 있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담당 교수님은 어머니의 소망을 알고 있는지라 아주 긍정적으로 말해주었다.

“걸을 수 있습니다. 발목 힘이 너무 약하지만, 보조기 차고 보조기구를 이용하면 걸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어머님께 확실하게 말해주니 어머님 눈꺼풀이 사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머님도 형님도 걸을 수 있다는 소리에 감격에 겨워 담당 교수에게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나도 걷는다는 소릴 들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슴이 뛰었다. 지금까지 의사 가운을 걸친 사람 그 누구도 나에게 이런 소릴 한 적이 없다.


“선생님 정말로 걸을 수 있나요?!!!” 난 가슴이 뛰었다.

“보조기구 차고, 보조기를 이용하면 걸을 수 있을 거예요. 무릎 아래 발목 기능이 안 좋지만, 보조기 착용하면 괜찮아져요. 사람이 발목 힘이 없으면 서 있을 수 없는데, 보조기가 그것을 잡아 줄 거예요.”


보조기구와 보조기란 말이 모호해서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걸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럼 얼마나 걸릴까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는가. 아니면 솔직히 이야기하기 무거운 질문이었나.


담당교수는 약간은 경직된 얼굴로 “재활은 길게 잡아 돼요, 6개월이 될 수도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걸릴 수 있어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잠 잘 자고 잘 먹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괜찮아질 겁니다.” 라고 말했다.

담당 교수는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인 분처럼 보였다.

그 긍정의 에너지 덕분인가 나도 덩달아 신이 날 정도였다.

아까 주치의도 1년이라고 했지만 1년이면 어떻고, 2년이면 어떤가! 어쨌든 희망이 생긴 것 같다.

이제부터 긴 재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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