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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아주 사소한 행복

1-11. 장애 그게 뭔데? 정신 줄 잡기.

by 우철UP


화장실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웹툰을 보거나, 신문기사를 읽거나, 친구들과 카톡으로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며, 변이 나올 때까지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던 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며, 특별할 것 없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젠 나에겐 평범함 넘어 그 일상이 언제 내게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다시말해 화장실에 앉아 변을 보는 일은 그저 아주 단순한 평범한 일상이 아니고, 스케줄에 맞춰 거사를 치루는 일과 같았다. 일단 화장실까지 가서 변기에 앉는 일부터 고역이었다. 생리작용인 배변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늘 배는 불러 있고, 가스는 뱃속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항문부터 직장까지 마비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변이 나오지 않는다.



장모님은 변비에 좋다는 온갖 식이섬유와 유산균 음료를 병원으로 공수했지만 변비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장이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식이섬유 음식을 섭취해도 변이 내려오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방 받은 변비약은 ‘마그밀’이었다. ‘마그밀’이라는 변비약은 대장의 수분을 흡수해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변을 무르게 만드는 수용성 변비약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큰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병원 음식이라는게 기름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변비를 유발하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변비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좌약 밖에는 길이 없었다. 그러나 좌약을 사용하게 되면 계속해서 좌약을 사용할 것 같아 좌약사용은 거부하고 있었다.




모든 근심 걱정을 해결해 주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나에겐 고역의 장소가 되었다.

화장실 변기에 앉는 것도 고역이었고, 감각기능도 사라졌기 때문에 변이 마려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저 담당 주치의가 정해진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변을 보기 위한 훈련을 하라고 했기 때문에 저녁시간마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것 뿐이다.



일주일이 넘도록 정해진 시간에 화장실 앉아 있어 봤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유지될지 아무도 모르고, 그저 이 상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막막할 따름이다.


주변에 나와 같이 척수 손상 환자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등등을 물어 보고 싶지만 나와 같은 척수손상 환자는 정말 희귀한 존재였다.


내가 머문 병실, 병동에도 척수 손상 환자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항문에 모든 감각과 힘을 모으고 변을 참으며 화장실 문을 두드리던 그때가 그립다. 화장실 문이 열리면 바로 벨트를 풀고 시원하게 변을 보며, 휴~하던 그때가 정말 그립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나또한 화장실에 앉아 변을 보는 일을 아주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항문이라고 하면 똥구멍, 냄새나는 똥이 나오는 곳이라는 생각에 다른 신체 장기보다 무시 했었다.

그렇게 무시했던 항문이 그 기능을 상실해 버리고 나니 내 인생이 완전한 반전을 맞이해 버렸다.



어느 드라마 인가? 어딘선가 본 기억이 있는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밥 잘 먹냐?’

‘네’

‘똥 잘 싸냐?’

‘네’

‘그래. 밥 잘 먹고 똥 잘 싸면 그걸로 됐다.’


정말이지 밥 잘 먹고 똥 잘 싸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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