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장애 그게 뭔데? 정신 줄 잡기
8일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수면제 처방을 받아 자기 전 복용하였지만, 눈만 감고 있으면 3m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떠올랐고,
몸은 축 늘어져 침대 아래로 꺼진 듯 내려앉았다.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로 잠이 오지 않으니 온몸에 힘이 빠진 상태이지만 머리만 깨어 있는 이상한 몸상태가 되었다.
밤사이 수면제도 소용없는 상태로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선잠을 자게 되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수면제도 듣지 않고, 밤만 되면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사고 당시의 모습이 사진첩을 넘기 듯 1장씩 내 머릿속에 박히며 지나가 버리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에 호스를 꽂고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늘 밤만 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태가 지속되자 주치의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신경정신과에 협진 의뢰를 하였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게 썩 기분 내키지는 않지만 밤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울화가 치민 상태로 살 수 없으니 진료를 받겠다고 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기자마자 신경정신과 선생님이 찾아왔다.
가족관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학력, 직장과 공부는 어떻게 병행하는지?
어쩌다 사고가 일어났는지?
지금 가장 불안한 것이 무엇인지?
가족과의 관계, 자식들과의 관계, 자식들은 내게 어떤 존재인지?
지금의 아빠를 이해하는지? 등등을 물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는 참 스마트하게 잘했다.
그러나 가족과의 관계,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서,
또 아빠를 이해하는지 등등의 질문들이 나오면서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젊은 선생님 앞에서 울고 말았다.
앞으로 못 걷고, 하반신 마비가 된 상태로 살아간다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진 기분이었다.
이제야 잘 풀리고 잘 되려 싶었는데, 사고 이후 불구가 되어 버렸다.
이런 내가 나 스스로 미울 수밖에 없었다.
진단결과는 사고 이후 흔히 겪는 외상 후스트레스였다.
의사 선생님은 약을 복용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지만, 정신과 약을 먹게 되면 괜히 기록에 남을 것 같은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극복해 보겠다고 했다.
중증센터에서 옮겨온 일반병실은 6인실이다.
현재 병실에는 3명의 환자가 입원 중에 있고, 모두 잘 걷는 환자들이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9일 전만 해도 나도 그들과 똑같이 걷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걷고자 하는 의지가 푹 꺾였다.
여기서 멘탈이 무너져 버리면 안 되는데....... 아직 재활치료를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무너지려고 하나?
나 스스로 한심해 보인다.
앞으로의 치료과정이 어떻게 될까? 일반병동으로 옮겼으면 어떤 치료과정이 있을까?
재활훈련은 언제부터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 뿐이다.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내 몸상태와 앞으로의 예후, 걸을 수 있는지 없는지 등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창밖에 퇴근시간에 막힌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저 줄지어 선 차들 속에 언제쯤 나도 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