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선의의 불씨

by 우철UP

얼마 전 ‘증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킬링타임용으로 보았는데, 은은하게 빛이 나고 아름다운 영화라고나 할까. 평점이 괜히 높은 게 아니었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자폐아 지우가(김향기)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그 사건의 증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런데 문제는 자폐아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가 증인으로서의 능력이 불충분하다는 사회적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지우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검사 희충(이규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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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 동생을 둔 희충은 지우와 막힘 없이 의사소통을 하였다. 이런 희충의 모습을 변호사 순호(정우성)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사 희충(이규형)에게 어떻게 하면 지우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때 희충이 이렇게 말한다.


“지체 장애인에겐 그 사람과 똑같은 속도로 걸어가면 되고, 자폐아에겐 그들만의 세계로 들어가면 됩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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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사를 듣고 보니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진으로 찍어두고 간직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아름다워 머리가 아닌 가슴에 저장시켜 놓았다.


내가 그림이라도 잘 그렸다면 그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 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그 상황을 부족하고 서툴지만 글로 남겨 놓으려 한다.


아들이 숙제도 열심히 하고 시키는 심부름도 잘하고 있어 아들이 그렇게 원하는 구글 기프트 카드를 선물로 사주기로 했다. 편의점까지 혼자 휠체어를 밀고 갈 수 있었지만 아들이 굳이 밀어준다기에 아들의 손에 의지해 휠체어를 믿고 맡겼다.


집에서 편의점까지는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신호등이 없다. 그래서 차량 통행이 없는 틈을 타, 작은 몸집의 아들이 재빨리 휠체어를 열심히 밀었다. 그런데 금방 전까지 보이지 않던 차(車)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꽤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이 뒤에서 휠체어 미는 것보다, 내가 쌩하니 밀고 나가면 금방 횡단보도를 지날 테지만 휠체어를 밀어주겠다는 아들의 성의를 봐서 그대로 가만히 몸을 맡겼다.


이때 어떤 20대 청년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속도로 바로 옆에서 걷고 있었다. ‘어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인가?’ 가만히 그를 바라봤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전혀 모르는 그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우리와 똑같은 속도로 발맞춰 걸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나. 그리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어린아이. 횡단보도에서는 한없이 약한 존재일 수도 있다. 물론 빠르게 달려오는 차들이 우릴 덮칠 일은 전혀 없겠지만, 그래도 심적으로는 위압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런 우리 곁에 그 청년이 우리와 똑같은 속도로 걸어가 주었다. 다시 우리에겐 심적으로 안정감이 찾아왔다. 그렇게 천천히 횡단보도를 빠져나오자마자 그 청년은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청년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저 청년 정말 대단히 착한 일을 했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착한 일?” 하며 물었다.


나는 아들에게 “저 아저씨가 일부러 우리 곁에서 걸었던 거야.”

“왜?”

“달려오는 차량을 막아 주기 위해 일부러 우리 옆에서 천천히 걸었던 거야”라고 알려 주었다.


그제야 아들은 사라져 가는 저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아들에게 너도 저 청년처럼 일상 속에서 착한 일을 하라고 말해 주었다.


일상 속에서의 선행, 그런 선행들이 자연스레 이어지면 김소운 선생님의 수필 ‘선의의 불씨’처럼 이 사회는 선의의 불씨가 살아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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