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아일랜드 일 년 살기
아일랜드에 가기 전 1년 준비 기간 동안 지갑에 구멍이 난 것처럼 돈이 안 모였다. 그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이 약 6천 원 정도였는데(정말 물가에 비해서 말도 안 되게 낮은 최저임금) 이십 대 초반 자취생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며 목돈을 모으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엄카"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처음 떠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하고 싶었다.
꼭 돈이 많아야 여행이 가능한 건 아니다. 여행 스타일에 따라서 돈이 없어도 숙식을 해결할 방법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초기 자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하듯 외국에 나가서도 똑같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정착할 집과 일자리를 찾는 동안생활을 뒷받침해 줄 기본적인 자금이 필요했다. 내가 목표한 금액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백만 원이었다. 3백만 원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시작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별도로 어학원을 등록했더라면 출국 전 지출해야 할 돈이 훨씬 많았을 텐데 나는 에이전시의 중개를 원하지 않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 에이전시를 통해 어학원에 등록하면 편리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지에 도착해서 스스로 어학원을 찾아보는 걸 추전 한다. 현지에 홀로 떨어지면 장을 보는 일부터 휴대폰을 개통하는 일까지 아주 사소한 일들을 수행하는데도 자신감이 필요하다. 어학원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에이전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씩 천천히 이뤄나가다 보면 그 성취감이 또 다른 일을 해내는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현지 어학원을 등록할 경우 그 어학원의 한국인 비율이 높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나는 어렵게 도착한 아일랜드에서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출국을 약 2개월 앞두고 내 통장에는 2백만 원 정도의 적금이 있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했던 풀타임 아르바이트는 공부와 병행할 수 없어서 그만두었고, 단기간 아르바이트로 연명 중이었다. 아주 조금씩 차곡차곡 돈이 모이긴 했지만 영어 레슨 비용을 내고, 항공권을 구매하고, 여행 준비 물품들을 구비하면서 적지 않은 돈이 지출되었다.
지금은 항공권을 구매할 때 조금 비싸더라도 편의와 효율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편이다. 장시간 경유하면서 굳은 몸의 피로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과 카페에서 쓰는 불필요한 커피값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융통성이 부족했던 그 당시에는 최저가 항공권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 그렇게 인터파크, 스카이스캐너, 키위닷컴, 땡처리닷컴 등을 열심히 검색하여 왕복 약 60만 원짜리(15시간 네덜란드 경유) 에어프랑스 항공권을 찾아냈다. 예약 취소와 변경이 가능한 항공권은 당연히 조금 더 비쌌기 때문에 돌아오는 비행기 표는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결제했다.
항공권을 결제하면 보통 이제 정말 떠날 일만 남았다며 안심하기 마련인데 나는 목표했던 3백만 원이 모이지 않아 걱정이 컸다. 3백만 원이 막상 가져보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 아니지만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해 본 자취생이라면 그때의 내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출국이 약 1달 전으로 다가왔을 즈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신세 지기 싫어하는 평소의 나라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방법인데, 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의 여행을 지원해 줄 자발적 기부금을 요청하는 메일을 하나 발송했다. 물론 진심을 다해 공들여 쓴 장문의 메일이었다. 그리고 답례로 소박하지만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로 엽서를 제작해 선물하기로 했다. 들숨 한번 크게 머금고 메일 발송 버튼을 눌렀을 때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도 관심이 없으면 어떡하지?" "도움을 받아도 사진엽서로 충분히 보답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런저런 걱정으로 흔들리는 와중 미동 없이 확고하게 버티고 있는 확신이 하나 있었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여행이 앞으로 나와 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편리하고 안정적인 삶보다 불안정하지만 도전적인 삶에서 더 배울 게 많다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셨고 물질적, 비물질적 지원을 해주셨다. 언어로 감사함을 다 표현할 수 없었지만, 몸과 마음 건강히 후회 없이 마음껏 경험하는 것이 앞으로의 내 몫이라고 여겨졌다. 덕분에 나는 목표했던 3백만 원보다 더 많은 경비와 따듯한 마음을 안고 출국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복 받은 여행이었다.
돈이란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자연스러운데 가진 돈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꿈의 크기를 일정히 유지하는 게 참 어렵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발급된 후 바로 출국 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나에게는 목표 금액을 모으는 과정이 다소 길고 지난했지만 낯선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갈망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소중했다.
지금 다시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면 돈을 얼마큼 가지고 갈까? 지금이라면 2백만 원만 있어도 떠날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삶의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 돈이 없어도 1년 이상 여행하는 사람이 있고, 돈이 많아도 여행에서 일찍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조건 안에서의 경험들과 생각들을 이곳에 적는다.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가 궁금한 분들은 여러 플랫폼을 통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