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던 중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by 꽁만이의 하루


글을 쓰면서 삶을 재정돈하고 새로운 활력을 얻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첫 글을 발행했다.


근데 오히려 두 번째 글을 무엇으로 써야 할지

고민이 된다.


- 육아에 대해 써볼까?

- 아니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써볼까?


늘 그렇듯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생각이 내 머릿속의 광역망을 타고 수습할 수 없이

번지기 때문에 빠르게 이상황을 종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기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두시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불끈)



그러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엄마는 평소 손님이 없는 시간을 피해 안부전화를 자주하는 편이다.


특별히 긴 수다를 떨지는 않지만 하루 이틀 간격의 전화로 엄마와 난

서로의 안녕을 확인한다.


최근에는 할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셔서

엄마가 고향에 가는 일이 잦아 전화가 뜸했더랬다.


할아버지는

말기암 환자로 4-5개월 전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더 이상 수술 또는 시술로는 병환에 차도를 보기 어렵다는 소견을 받으셨다.


지금은 고향 인근 병원에서 수액으로 영양을 보충받으며 그때 그때 발생하는

증상들을 달래며 지내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그럼에도 삶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이셨고

몸이 불편한 중에도 그림을 그리시곤 했다. 의식도, 판단력과 분별력도 여전히 빛나는

우리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여전히 존경받는 분이다.


투병 중에도 삶을 멋지게 향유하고 계신 할아버지


그렇게 오랜만에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끼니를 챙겼는지, 손주는 잘 있는지… 평소와 같이 대화가 흘러갔다.

그리곤 할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제법 소상하게 이야기해주셨다.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암 환자이면서도 의식이 있는 상태여야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원이 까다롭다고 한다.


지금 대기 환자도 많고 여러 가지 조건이 맞기가 참 어려운데, 할아버지의 경우

상황이 운 좋게 맞아 떨어져서 빠르게 전원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병원 측에서 상담할 때도 복이 많으시다, 정말 운이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한다.


아 그렇구나, 하며 지금까지 진행된 '절차와 과정'에 대해 귀 기울여 듣고 있었는데

어느순간부터 너무 차분한 듯한 느낌이 되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 어떤 힘든 일도 이 악물고 참으며 주어진 일을 흔들림 없이 지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성정을 비추어볼때 엄마는 지금도 차분하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며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중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시게 되는 모든 과정을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고 소상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털어 놓을 곳이 필요해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어젯밤 들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밤을 지새우다 추스리기 어려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을 것이고 지금 어디에라도 이 마음을 토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방법은 아주 정돈되고 차분한 말로 딸에게 있었던 일을 소상히 설명해주는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이 전화를 하는 내내 어우러지다보니 나 역시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은 통화를 하는 내내

엄마에게 괜찮은지 묻고 싶었다.


약간의 울먹이는 순간이 있었지만 엄마는 결국 울지않고

- 할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과정

- 앞으로의 진행계획과 현재 할아버지의 상태

-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엄마의 생각을 정말 FACT에 근거하여 모두 설명했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하며 끊으려고 하자

뭔가 엄마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나는 "엄마 화이팅!" 을 외쳤다.


엄마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추억이 가득해 나 역시 슬픈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슬픔이 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였다.

이 순간은 오로지 엄마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은 순간이였다.


엄마는 그제서야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할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간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

그런건 입 밖에도 내기 싫었다며,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하나 둘 털어놓았다.


의사가 어떤 말을 했고 그에 대해 할아버지가 어떻게 대답했고

이를 보는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모든 장면들에 담긴 기억과 감정을

엄마는 아주 세세하게 토로했다. 내가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엄마는 나에게 감정이 섞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눈물도 흘리고, 마음도 다잡고... 여러가지 마음의 정리를 한듯 보였다.


평생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해 온 엄마는 유교사상이 강했던 할아버지에게

복음을 권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할아버지가 말씀을 읽거나 듣기도 하시고

엄마에게 역으로 좋은 말씀을 보내주신다고 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키고 도우신다는 성경 말씀을 보며

든든하고 좋다고 하셨단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가시는 날까지, 크게 아프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속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모든 것이 은혜라며 이제는 오늘 가셔도 여한이 없다면서

차분히 감정을 추슬렀다.


엄마는 환갑이 넘어서까지 사랑받는 딸이였고 아버지의 사랑과 격려 아래에서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 엄마와 나눈 통화에는

담담함과 요동치는 슬픔과 탄식, 평안과 감사가 있었다.


좀처럼 하나로 묶이기 어려운 많은 감정들이 한데 몰아치니 이것을 소화하는데

엄마나 나나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슬픔은 계속해서 불쑥불쑥 튀어 오르겠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오늘 엄마와의 통화를 통해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을 함께 받아들이며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의 성향과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받은 상처를 앞세워 엄마의 성향을 원망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날들도 지나 어느새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엄마의 담담하고 냉철한 모습에

이제는 숨겨진 표정이 보이는 것을 보니

나도 약간 나이와 철을 함께 먹은 것 같은데ㅡ


야속하게도 할아버지는 그만큼 나이가 들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오늘 이 한통의 전화를 받기 전만 해도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새 나는 눈물을 쏟으며 한 바닥을 쓰고 있다.


엄마도 통화를 마친 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눈 앞에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을 것 같고,

나 역시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복잡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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