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을 읽고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 <엄마 생각>이라는 기형도의 시를 배운 적이 있다. 찬밥처럼 방에 담겨있다는 표현이 너무 차갑고 외롭고 쓸쓸하고 마음에 들어서 기형도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았다. 이제는 눈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질투는 나의 힘>. 한 줄 한 줄이 이만큼 강렬하게 다가오는 시는 처음이었다. 문학과 독서를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하지만 이 시를 접한 후 과장을 조금 보태어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고 할 수가 있겠다. 대학교에 가서 문학을, 구체적으로는 시를 배우고 알고 싶어졌다.
그렇게 입학하게 된 국어국문학과에서 나는 헤매고 말았다. 전공필수 학점을 채우기 위해 관심도 없는 어학 수업을 억지로 들어야만 했다. 음운론, 의미론, 방언학, 훈민정음 수업••• 달달 외우기만 하면 되었기에 점수는 좋았지만 늘 하고 싶었던 문학 공부에 목이 말랐다. 2학년 봄에는 기대했던 현대시론 수업을 들어도 채워지지 않았다. 시인인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학점도 그저 그랬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뭘까? 너무 무모한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고 그냥 이대로 졸업요건만 대충 채워서 졸업만 하는 게 꿈이었던 때도 있었다.
바로 그때, 이 시가 또 생각이 났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질투는 나의 힘’에 끌렸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시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 숨어있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고. 그냥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무언가가 나를 이 시로 이끌었다. 몇백번이고 시를 읽게 했고 몇십번이고 필사하게 했다.
지독히도 예민한 나는 항상 번민하고, 괴로워하고, 무언가를 질투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희망 없는 삶을 살아왔다. 앞으로의 삶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그때마다 나에겐 시 한 구절이 있을 것이다. 번민함, 답답함, 괴로움, 질투, 머뭇거림과 같이 부정적이라 넘기고 싶었던 마음들이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온전히 나를 끌어안고 덮어주는 것은 나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느낀 적 없었지만, 삶이라는 일련의 지리멸렬한 궤적을 뒤돌아봤을 때, 결국 모든 순간이 나를 사랑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것을 마침내 알고야 말 것이다. (2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