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황병승, <메리제인 요코하마>를 읽고

by 아달린


잠을 통 못잤다. 새벽 다섯 시에 깨서 물 마시고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요즘에는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갑자기 불쑥 어딘가에서 본 문장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럴듯한데, 이거 어디서 봤지? 검색하지 않고 떠올리려 했지만 글쎄 이제는 참을성이 거의 없어졌다. 검색창에 쳐 보고 나서야 시의 한 구절이라는걸 알았다. 황병승의 <메리제인 요코하마>. 대학에 입학하고 우연히 알게 된 시인인데 내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꾹 참고 읽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이왕 샀는데 돈 아까우니까 하는 이유가 첫 번째, 신선하긴 하다는 이유가 두 번째. 그리고 또 기억났다. 그가 몇 해 전에 죽었다는 것이.


그 언젠가 요코하마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떠올릴 만한 정도의 시라고 생각했다. 정작 화자는 요코하마에 가 본 적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라는 물음엔 글쎄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겠다. 더는 우리가 아닌 우리에게 우리를 기억하냐고 묻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기 때문에. 멍하게 있다가도 10여 년이 지나 불현듯 생각나는 걸 보면 이 구절이 기가 막히긴 한갑다. 오늘 출근길에는 겨울에 산 메리제인을 신을까 하는 약간은 나이브한 생각을 하다가 관뒀다. (2023.6.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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