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퇴고 후, 드는 잠자리"
하지 말아야 하는 이런 노동
"16시간 퇴고 후, 드는 잠자리"
나의 하루를 한 장면으로 그려본다면, 나는 아마 잠자는 모습일 것이다. 노트북을 펼치고 문자들과 싸우다 지쳐 쓰러진 사람처럼, 겨우 잠자리에 든 모습. 그 장면에는 화려함도, 성취의 포즈도 없다. 대신 오래 깜빡이던 화면의 잔상과, 아직 끝내지 못한 문장들이 이불 가장자리에 남아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15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쓸 때가 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또 퇴고하기를 반복한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으로 돌아가고, 한 단어가 어색하면 문단 전체를 갈아엎는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글을 쓰고, 시산을 쓰고, 체력을 쓰고, 감정을 쓴다.
밤이 깊어지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손끝의 감각이 둔해진다. “이제 그만 자라”는 몸의 말에 노트북을 덮지만, 기한이 촉박한 글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냈다는 위로. 하지만 침대에 누워도 글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미처 붙잡지 못한 문장 하나가 불쑥 떠오르고, 고치고 싶었던 문단이 머릿속에서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서 나는 종종 다시 일어난다. 이미 불을 껐는데도, 노트북을 펼칠 때도 있다.
이 장면을 밖에서 본다면, 조금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 잠을 자려다 말고 다시 일을 하는 사람. 효율과는 거리가 먼 모습. 하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인간애를 본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 앞에서 이렇게 허술해진다. 합리적이지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 그냥 놓치기 싫어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더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덜 미안해지고 싶어서. 내 마음에게,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이불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전에 문장 하나를 더 다듬는 이 행동은, 나에게는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잠자는 나의 모습은 그래서 패배가 아니라 휴식 중인 투쟁이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써낸 사람만이 허락받는 잠. 생각을 다 쏟아낸 뒤에야 겨우 얻는 쉼. 잠든 얼굴에는 낮 동안 애써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 써냈다는 안도, 아직 부족하다는 아쉬움, 그래도 내일은 다시 쓰겠다는 묵직한 약속이 한데 섞여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중한다. 잠자는 나의 모습은 내가 게으르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쉽게 살지 않았다는 흔적이다.
세상은 깨어 있는 시간만을 성과로 평가하지만, 나는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떤 이는 도망치듯 잠들고, 어떤 이는 다짐을 품고 잠든다. 내가 잠든 모습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하루치의 질문과 답변이 모두 들어 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놓쳤는가, 어떤 문장 앞에서 멈췄는가. 그리고 내일, 나는 다시 어떤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 것인가.
그래서 나의 하루를 한 장면으로 그린다면, 나는 여전히 잠자고 있을 것이다. 지쳐 있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으로. 언제든 다시 깨어나 글을 쓰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으로. 그 장면 속의 나는 완벽하지 않다. 다만 인간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인간적인 장면을, 오늘도 사랑한다.
(출판사 퇴고 기한 맞추느라, 오늘도 16시간을 앉아서 씨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