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이성을 이길 때"
집에 있기가 갑갑해서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았다. 대구로 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대전으로 가는 게 좋을까, 그래 오늘은 대전에 가보자! 구미역 주변에 주차를 하고 열차표를 끊었다. 무슨 생각인지 스마트폰 앱에서 예매하면 될 걸 창구에서 종이 티켓으로 발급받으면서 드는 생각이. '뭐 하는 짓이지?' 플랫폼으로 갔다. 비슷한 시간에 경산에서 대구를 거쳐 구미까지 오가는 대경선 도시철도가 있다.
'가만있어 봐, 대구로 갈까?'
마음이 복잡하다. 대구까지는 40여 분, 대전까지는 1시간 10분이 걸린다. '에라 모르겠다. 창구로 가서 티켓을 취소했다. 대구로 가려고 플랫폼에 나갔더니, 아무도 없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나 혼자뿐이네.' 몇 분이 지나서 건너편 플랫폼을 보니 사람들이 북적댄다. '어라? 대구 가는 건 저쪽이네!' 처음 타보는 대 경선이라 승하차 구간을 잘 몰랐던 거다. 허겁지겁 계단을 오르내려 건너편으로 갔다. 다행히 열차가 20분 연착한단다. 줄을 섰다. 그 사이에 대전행 열차가 건너편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전으로 갈걸 그랬나?'
'그런데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이럴 시간에 퇴고나 할걸...'
연착됐다던 열차가 도착한다는 신호음이 울리고. 안내 방송이 플랫폼 천정에서 흩뿌려지듯이 울렸다.
'그래, 이건 미친 짓이야. 생명이 없는 일에 마음을 허비한다는 건 미친 짓이지'
열차가 들어서자 나는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떤 날은 이성이 내게 핑계와 같은 논리를 들이댄다. '오늘 하루쯤은 괜찮아. 해야 할 일을 미뤄도, 뭐 어때 나중에 좀 더 하면 되지.' 나는 그 달콤한 합리화에 잡아먹힌 적이 수도 없다. 그 꼬임은 마치 나를 위로하는 달달하지만, 내 삶을 갉아먹는 유혹이라는 걸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 맞다. 유혹이다. 이성은 언제나 날카롭고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가장 교묘한 도구로 변한다.
바로 그때, 의지가 고개를 든다.
“너는 지금 해야 할 일을 해라. 너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마라.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이성이 달콤한 이유로 나를 흔들 때, 의지는 나를 잡아준다. 그 순간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은 삶의 중요한 결단은 언제나 이성이 아닌, 의지의 몫이다.
의지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중심을 붙잡는 힘이다. 이성은 끊임없이 계산하며 유리한 길을 찾으려 하지만, 의지는 방향을 잃지 않게 만든다. 가령,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붙잡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려는 순간이 있다. 이성은 말한다. '조금만 보다가 그만두면 돼.' 그러나 의지는 결단한다. '책을 펴라. 오늘 하루의 시작을 헛되이 하지 마라.' 그 작은 결단이 결국 하루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삶은, 거대한 목표를 세울 때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허튼짓거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현재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미래의 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곧, 오늘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학자 스토아학파는 '자기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방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곧 의지가 이성을 이기는 순간이다. 이성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합리화하지만, 의지는 내가 지켜야 할 것을 분명하게 잡아준다. 결국 자유로운 인간은 욕망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쓸모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켜야 할 삶의 태도이다.
의지가 이성을 이겼을 때, 삶은 놀라운 전환점을 맞는다. 작은 유혹을 이겨낸 순간의 결단이 쌓여 나를 뿌리 깊은 사람으로 만든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중심을 잃지 마라. 허투루 시간을 쓰지 마라. 지금 이 순간이 너의 삶 전체가 만들어진다.'
결국 삶은 거대한 사건이 아닌,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결정된다. 의지가 이성을 이길 때, 우리는 비로소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은 곧 삶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가장 현명한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