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를 끌고 역사를 들어서는데,
챙 달린 모자에 마스크를 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밥을 못 먹어서 그러는데 돈 좀 주시면 안 돼요?"
나는 본능적으로 "앵벌이 수법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외면했다.
몇 발자국 가다가, '밥을 못 먹어서'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되돌아보니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구걸을 하고 있었다.
역시 그도 나처럼 외면하고 돌아서는데,
나는 그 아이를 불렀다.
"...여기"
내 쪽을 바라보는 그 아이를 향해 오라고 손짓했다.
그 아이는 단발머리를 찰랑 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나에게 왔다.
"밥을 못 먹었다고?"
"네..."
"왜 밥을 못 먹었어?"
"집을 나왔어요."
왜 집을 나왔냐고 하려다 잔소리 같아서 말았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빨리 집에 들어가거라. 알았지?"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그 아이를 보호해주고 싶었다.
만약, 그 아이가 차비가 없다고 했거나 다른 이유를 대면서 돈을 달라고 했다면,
'뻔한 수작'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외면했겠지만,
'밥을 못 먹었다'는 말이 가슴을 꼭 찔렀다.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알기 때문이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내가 만 원을 준 것도 이유가 있다.
한 번은 서울 종로에서 배고프다며, 돈 달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날도 역시 '배고프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천 원짜리 석 장을 주고 돌아서는데,
언 듯 든 생각이, 배고프다는 사람에게 3천 원을 주면,
그 돈으로 무얼 사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그 사람을 데리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사줬던 기억이 있다.
돈을 주기보다 밥을 사주는 게 옳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가을철이라 세꼬시 회덮밥이 맛있을 것 같아 시켰는데, 잘 먹지 못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치아가 다 빠지고 없단다.
순간,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지?
이게 돕는 건지 오지랖인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하여튼, 그때 생각이 나서 그 소녀에게 한 끼를 사 먹을 수 있는 만 원을 준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아이가 정말로 집을 나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달라고 했는지, 아니면 약은 수법에 내가 넘어간 건지는 모르겠다.
그것을 따지기 보다, 나는 내가 그 아이를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순백의 내 마음에 모든 걸 걸었다.
나는 지금도 간간이 그 아이가 생각나면 마음으로 빌어본다.
하루빨리 방황을 끝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