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나이

어릴 적 나의 꿈

by 최호용

어린 시절, 달력 속 신성일과 윤정희 그리고 아역 배우 김정훈의 눈빛은 내게 마치 꿈의 표지판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저들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교회에서 성탄절 단막극을 할 때면 나는 주연을 맡아 무대를 빛냈다. 학교에서 학예회에서도 무대 위의 나는 언제나 중심이었다. 모두가 "너는 배우가 돼야 해"라고 말했다. 나 역시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미 내 운명은 정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살던 시골 장터에는 가끔 약장수 공연단이 찾아왔다. 그들은 한 달씩 하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다. 기계 체조를 하며 술통을 발로 굴리는 여자아이, 맨손으로 술병을 깨는 차력사, 우산 위에 불공을 굴리는 난쟁이, 그리고 원숭이 두 마리까지, 하지만 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연극단이었다. 장날이면 나는 그 천막 앞을 떠나지 못했다. 조명이 켜지고, 대사가 흘러나오면 세상은 온통 그 무대뿐이었다. 그들이 짐을 싸서 떠날 때면, 나도 그들과 함께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들곤 했다. 현실은 어린 소년을 붙잡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 천막을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또 하나의 꿈이 있었다. 바로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편애하지 않으며 모두를 품는 선생님, 하지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현실적 벽은 높았다. 나는 어린 나이에 그 꿈을 접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우의 꿈만을 품고 자라던 나는, 세월이 흘러 '극단 단원 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보았다. 그날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19살, 아무 연줄도 없던 나는 오디션을 보러 찾아갔다. 무대 위에서 대사를 읊으며 떨리던 그 순간, 나의 가슴은 불타올랐다. 그렇게 나는 연극배우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고, 배우로서의 열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30대에 들어서면서는 연출로 방향을 넓혔다. 구미 시립 극단의 상임 연출을 맡았다. 개인 극단도 운영했다. 내 인생의 절반은 무대 위에서 흘러갔다.


무대는 내게 삶 그 자체였다. 관객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내 심장의 박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극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사명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50살이 넘은 나이에 방송고를 다녔고, 방송 연기를 전공한 뒤에 경영학과를 거쳐, 경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렇게 얻은 배움은 나를 다시 한번 무대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는 '강의'라는 무대였다.


학교 진로 캠프, 정부 청사, 전문 기관 특강을 다녔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이야기할 때, 나는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아, 내가 지금 선생님이 되었구나." 어린 시절 그토록 바라던 '선생님'이란 호칭을, 강사로서의 삶을 통해 얻게 되었다. 연극 무대에서 배운 표현력과 감정의 깊이가 강의에서 빛을 발했다. 강단에서 나는 또 한 번의 배우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인생은 돌아 돌아 결국 나를 꿈의 자리로 데려왔다. 어릴 적 배우가 되고 싶었던 마음,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소망, 그 두 가지 꿈은 서로 다른 길 같았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났다. 배우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강사로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모두 사람을 향한 예술이었다.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어린 날 배우의 꿈, 그리고 따뜻한 선생님이라는 꿈. 두 마리 토끼는 서로를 쫓으며 내 인생의 무대를 완성시켰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무대 위에서, 사람의 마음을 연기하고, 가르치고, 살아가고 있다.


"꿈은 때로 멀리 돌아가지만, 진심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온다."


내 인생은 바로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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