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을 먹던 중 직장 동료가 성폭력피해를 경험하고 재판을 하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지리한 소송을 끌고 가는 피해자가 안쓰럽다고 말하며 마지막에 하는 말 “그 피해자 이혼했데요.” 순간 동료의 눈을 더 쳐다볼 수 없어 먹던 국수에 눈을 처박는다. 피해를 경험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사람의 개인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업무를 할 때 이기적이었고, 배우자와 사이가 오래전부터 좋지 않았고, 남자 후배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고 등 공교롭게도 피해자는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모든 이야기를 한 번에 정리하는 말은 ‘이혼’이다. 정확히는 ‘이혼 한 여성’이다. 내가 더 놀라운 것은 이 말에 반응하는 청중이다. “아....” 뭔가 마지막 퍼즐을 맞추었다는 그 안도감을 나는 본다. 이 불운과 흠의 대명사 ‘이혼’.
최근에 이혼은 결혼한 부부 3쌍 중에 한 쌍이 하는 것이라지만 주변에 생각보다 이혼 경험자가 많지는 않다. 나는 세 명의 언니와 한 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이 중에 세 자매가 결혼했다. 우리는 3명의 커플 중 이혼한 커플이 없음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이혼한 자매가 나오기를 고대했다. 짐작하다시피 이혼을 고민하지만 이혼까지 성사는 쉽지 않으므로 이혼을 할 듯, 할 듯 막상 도장은 찍지 않는 자매를 보며 우린 “대체 이혼 파티는 언제 하는 거냐?”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리고 막상 자매가 이혼했을 때 우린 자매의 결정력과 추진력, 약속한 일을 해내는 담대함에 깊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언니는 이번 생에 이혼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다며 아직 이혼하지 않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직장에 이혼한 것을 알려야 하는지, 전 시아버지 부고에 휴가를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전 시아버지의 49제를 가는 것이 좋을지 등등이다. 나는 준공무원 같은 보수적인 직장에 굳이 이혼을 밝히는 것만이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아니며, 서류상 시아버지가 아닌 사람의 가족상 휴가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장례나 49제에 참석하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마음이며 이혼을 해서 못 간다거나, 안 간다거나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혼을 해도 좋은 마음이 남는 시부이면 장례, 49제, 매년 제사도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언니와 이혼 한 전 형부는 언니의 집에서 창문을 열면 보이는 거리에 산다. 부부가 같이 살기 힘들어 이혼했지만 딸은 같이 키운다. 양육권과 친권은 언니에게 있고 형부는 150만 원의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고 반려견에게 들어가는 일체의 양육비를 낸다. 주말 일정을 조정해 아이 돌보는 날을 정하고, 주중에 언니가 야근을 하는 날은 형부가 아이를 본다. 형부는 지금도 출장을 가기 전 근처에 사는 처형들에게 밥을 사고, 출장을 다녀올 때면 처형들의 선물을 사 온다. 자신의 딸의 근거리에 사는 이모들이 틈틈이 양육의 공백을 메워주는 것을 고마워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의 이런 행태에 적응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재밌다고 한다. 엄마가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언니 집에 올 일이 있었는데 전 형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엄마는 조금 어색했다고 말했다. 나는 얼마 전 경기도의 언니 집에 갔다가 자전거를 실어올 일이 있었는데 형부에게 전화해 서울까지 실어달라는 부탁을 했고 기꺼이 해줬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엄마가 왜 불편한지를 되물었다. 엄마는 “너희랑 사는 게 다른 시대인가 보다...”라고 말했다. 언니의 이혼에 대해 “깊게 생각해서 한 결정일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 엄마였지만 법적인 사위가 아닌 사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몸이 익숙하지 않은 눈치다.
나는 언니가 이혼하고 세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예뻐질 것. 둘째, 페미니즘을 공부할 것. 셋째, 같은 이혼녀들과 경험을 나눌 것.’이었다. 첫째, 예뻐지라는 당부는 카카오톡 프사에서 이혼한 형부의 사진을 가끔 보는데 피부에 꿀을 바른 듯 미끈하다. 몰라보게 피부가 좋아지고 예뻐진 형부를 보며 언니 또한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몸과 마음은 같이 가는 법이니까. 둘째, 페미니즘을 공부하라는 당부는 ‘이혼’한 사람을 불행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언사들에 자신을 지킬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비행한 자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걔네 부모가 이혼했데...”라는 끝맺음 말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는 비범함을 장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같은 이혼녀들과 경험을 나눌 것이다. 결혼한 사람은 도처에 있지만 이혼한 사람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이혼 후 고민에 대해 누구보다 괜찮은 답을 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기에 자원을 잘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언니가 이혼한 후 난 이혼이 하고 싶어졌다. 백혈병으로 삭발한 친구 곁에 삭발로 우정을 보여준 친구처럼 나 또한 그러한 친구가 되고픈 마음이다. 존재 자체로 언니의 고민과 고통과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지인들에게 언니의 이혼 소식을 들려주면 “아... 어쩌다...”라며 안타까워하는 반응에 조롱하고 싶어 진다. 조카와 함께 간 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들이 결혼하지 않은 아들을 안타까워하다가 “그래도 이혼한 것보다는 낫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조카가 듣지 않았으면 싶다. 내 마음이 아니어서 듣지 않을 수 없는 말들이니 언니와 조카와 같은 처지가 되어 같이 들어주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든든히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